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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버젓이 있는데 왜 죽어야 하는가

“약이 버젓이 있는데 왜 우리가 죽어야만 합니까?” 10월 7일 서울 대치동 로슈(다국적 제약회사) 건물 앞에서 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수 에이즈 치료제를 한국에 공급하고 있지 않은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를 상대로 벌인 국제 항의시위의 마지막 날이었다. 프랑스 Act Up Paris(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 권력 해체를 위한 에이즈 연대)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이번 국제공동행동에는 앞서 프랑스, 태국, 미국의 HIV 감염인과 활동가 들도 함께했다.

로슈가 생산하는 푸제온은 이전 HIV 약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의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다. 그런데 로슈는 정부와 약가 협상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푸제온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로슈는 연간 2천2백만 원을 약값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에 버금가는 약가를 요구하는 것은 그 누구의 상식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가격은 이미 한국에서 시판된 HIV 치료제 중 가장 비싼 약의 두 배에 이른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살아가는 감염인들에게 푸제온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는 푸제온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다. 한국에 공급되는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긴 그에게 푸제온은 삶을 연장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였지만 로슈는 그 약을 공급하지 않았다. 그는 외국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독한 순간을 모면했지만 한쪽 시력을 잃은 뒤였다.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됐다.

이미 2004년 5월에 식약청 허가까지 받았는데도 그 약이 필요한 환자는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과연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몸이 아파도 치료받을 권리조차 제한받는다. 제약기업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약을 공급하지 않고, 정부는 시장경제를 들먹이며 기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사이 환자들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푸제온을 당장 공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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