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어떻게 건설하셨죠?
정동원│지난해 10월 노동조합 설립전에는 임금도 낮았고 삶이 비참했죠. 아침에 10분 전에 와서 체조도 해야 했는데, 점심시간 빼앗아서 청소 시키고 그랬어요. 생산관리과장은 늘 초시계를 들고 다니면서 몇 초에 몇 개 나오네했죠.
노동조합 만들고 나서 나이 든 여성 조합원이 ‘편해 죽겠다. 관리자들이 내려와서 입 안 떼지, 쉬는 시간 인정되지, 내가 바보 같이 왜 이렇게 살았냐’ 하시더라구요.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싸우고 승리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정동원│총파업을 거의 17∼18일 동안 하고 있었지만 끝나지 않았어요. 사측이 옥천공장, 시화공장에서 대체생산까지 했기 때문이죠.
근데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확대간부 파업을 하고 2월 18일 지부총파업까지 하려 했죠. 이에 회사에서 굉장히 압박을 받아 직장폐쇄까지 풀고 교섭 자리에 나오게 됐죠.
조상흠│파업 할 때 하루는 아주머니들끼리 술 한잔 하고서 노동가를 크게 틀고 계속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속 시원하다 그래요. 돌아가면서 철야 농성을 했는데, 추운 날씨에도 노동가를 틀고서 천막에 들어와 몸 녹이라 해도 안 들어오시고 계속 했어요.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동국대 청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서도 3천 명이 연대 파업한 전통이 있죠?
조상흠│그게 2006년이고 2007년에도 광진상공지회 여성 노동자 강제 희망퇴직에 맞서 4시간 주야간 파업 때려서 다 복직시켰죠. 연대하고 싸워서 져 본 적이 없어요.
정동원│우리가 더 물러서면 답이 없다는 생각, 노동자는 하나고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떤 투쟁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정리 이재환 현장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