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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노무현 쪽도, 이명박 쪽도 모조리 밝혀야 한다

‘박연차 리스트’에 현 정권 실세들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 수십 명과 정관계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친 노무현 인사들이 대거 수사선상에 오르자 민주당 측에서는 “씨를 말리려는 거냐”고 아우성을 치고 있고 한나라당도 추부길 구속으로 끝나겠느냐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검찰과 법원, 경찰, 국세청 등 권력 기구 곳곳에 썩은 물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무현 정부의 외곽 실세로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과 휴켐스 매각 과정에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돈을 뿌린 혐의와 탈세 혐의로 지난해 말 구속됐다. 이 사건에서 노무현 형 노건평도 거간꾼 노릇을 하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 돈이 곳곳으로 흘러 들어갔음이 밝혀졌다.

전임 정부의 부패 스캔들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당을 공격하는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연차 리스트’에 이명박 정부 실세들과 검찰 고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검찰 수사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4.29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이광재 등 민주당 핵심 인물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지난해 촛불항쟁 모독(“사탄의 무리”)으로 쫓겨난 추부길도 이 추잡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였던 이정욱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였던 송은복(전 김해시장) 등이 구속됐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종찬 등이 박연차 구명을 위한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검찰 관계자의 진술도 보도됐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상처를 입히려는 검찰의 표적 수사 가능성도 제기됐고 친 박근혜계 중진 의원들까지 겨냥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라는 얘기도 있다. 이런 비판을 면하려고 검찰이 끈 떨어진 현 정권 인사를 포함시켰다는 주장도 있고, 캐다 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줄줄이 딸려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깃털과 꼬리

그러나 지난해 6월에 쫓겨난 추부길에게 7월 31일에서야 시작된 세무조사를 무마하려고 9월에 돈이 전달됐다면 그가 ‘몸통’이라는 말을 누가 믿을까? 〈동아일보〉조차 “MB정권의 ‘썩은 사과’, 추부길 씨뿐일까” 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추부길이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한 ‘형님’ 이상득 연루설이 그래서 나온다.

검찰은 삼성 이건희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그 자신이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현 정권과 박연차의 검은 고리를 밝힐 키를 쥔 전 국세청장 한상률이 ‘홀연히’ 출국했고 검찰은 이를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검찰은 ‘깃털’ 뽑고 ‘꼬리’ 자르는 수준에서 사건을 무마하려 할지도 모른다.

“집권 2년차는 부패가 고개를 드는 해”라고 〈조선일보〉가 경고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차에도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집권 후 내각이 출범하기도 전에 장관 3명이 표절·투기·부정부패 의혹으로 낙마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시의회 의장 김귀환의 금품 살포, 이명박의 처사촌 김옥희가 벌인 공천 장사, 한나라당 상임고문 유한열의 군납업체 로비 사건 등 끝도 없었다. 게다가 이명박은 지난해 8월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배임·횡령·탈세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재벌 총수 74명을 사면까지 해 줬다. 삼성 이건희 비리 사건은 법정 선고 기한을 넘기며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검찰, 사법부가 앞장서서 부패 ‘규제 완화’에 나선 꼴이니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사건의 당사자인 민주당에게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것도 명백하다.

따라서 이 거대한 부패의 그물망을 뜯어버릴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경제 불황과 이명박 정부를 향해 켜켜이 쌓인 대중적 불만 때문에 이런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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