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민주당 플랜’:
‘제3의 길’은 대자본의 요구에 알아서 기겠다는 선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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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뉴 민주당 플랜’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 골자는 ‘분배’ 대신 ‘성장’을, 중산층·서민뿐 아니라 부유층과 특권층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뉴 민주당 비전위원회’ 위원장 김효석은 “분배에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돼 있는 이미지를 바꾸고 성장을 앞에 내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석의 말마따나 민주당에게 분배 정책은 “이미지”였을 뿐이다. 단적인 예로,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빈부격차는 오히려 증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1995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은 헝가리와 폴란드에 이어 소득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졌다.
또, OECD의 2007년 ‘한국경제 보고서’는 1990년대 중반 9퍼센트였던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높아져 OECD 평균치(10퍼센트대 초반)를 훨씬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뉴 민주당 플랜’은 이미지일 뿐이었던 분배 간판을 이참에 떼고 “모두를 위한 번영”, 즉 “부자를 적대시하지 않는, 대기업을 적대시하지 않는 방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김효석은 이를 두고 “과거 우리 당[민주당]의 이미지와 다르고 한나라당과도 차별화되는 제3의 길”이라고 했다.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외피
원래 ‘제3의 길’은 미국의 클린턴 정부, 영국의 토니 블레어(노동당) 정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사회민주당) 정부 등이 주창했고, 한때 유럽과 세계 차원에서 중도 좌파의 핵심 의제였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제3의 길’을 추진한 바 있고, 노무현은 ‘좌파 신자유주의’를 자처하며 한미FTA 추진을 정당화했다.(독일 슈뢰더 정부에 큰 영향을 미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제3의 길’을 ‘신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불렀다.)
토니 블레어의 정치적 ‘스승’인 앤서니 기든스 ― 기든스는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을 만난 바 있다 ― 의 설명에 따르면, ‘제3의 길’은 “구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와 신자유주의 둘 다를 뛰어넘는 것이다. ‘뉴 민주당 비전위원회’에 참여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제3의 길’이란 결국 서구의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동시적 극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3의 길’을 따른 정부들이 모두 예외 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했다는 사실은, ‘제3의 길’이 실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외피였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제3의 길’은 “모두를 위한 번영”이 아니라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에 복무했다. 클린턴은 재정적자 축소, 자유무역 등을 요구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월스트리트의 압력에 굴복해 건강보험·복지 개혁을 팽개쳤고, 블레어는 보수당 정부보다 더 많은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사회 복지가 최대 속죄양이 됐다. ‘제3의 길’식 복지 ‘개혁’(이른바 ‘적극적 복지’, ‘일하는 복지’) 때문에, 1990년대 경제 호황으로 당시에는 그 잔혹성이 상대적으로 덜 표면화됐지만, 지금 미국과 영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레이건과 대처 시절보다 더 혹독한 시장의 잔혹함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제3의 길’이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분법”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남 때리기’, ‘부자 때리기’ 정당” 이미지를 걷어내겠다는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제3의 길’은 결국 집권을 위해 대자본의 요구에 알아서 기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3의 길’은 분배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또, 민주당이 새삼 강조하는 “성장”은 자본 축적의 다른 말이고, 자본 축적은 다른 한편에서 빈곤의 축적을 낳는다.
이런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성장 만능주의”를 진지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는 조금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