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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한국 정부의 미국 전쟁 지원 전력

한국 정부의 전쟁 지원 역사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부터 출발한다. 미국이 무려 200만 명의 베트남인들을 학살한 전쟁에 박정희는 ‘몸을 사리지 않는’ 지원을 보냈다.

미국이 25개국에 참전을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인 나라는 7개국에 불과했다. 직접 전투에 참가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박정희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 동안 32만 명의 한국 젊은이들을 ‘자유의 십자군’으로 추켜세우며 미국의 학살 전쟁에 밀어넣었다.

전쟁에 참가한 한국군 중 5천 명이 죽었고, 부상자가 2만 여명에 달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사용한 고엽제 때문에 전쟁 후 5만 8천 명이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베트남 전쟁 후에도 파병은 계속됐다. 한국 정부는 여섯 차례나 파병했다. 1991년 2차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4년 서부 사하라, 1995년 앙골라, 1999년 동티모르, 2001년 아프가니스탄.

미국이 6주 동안 20만 명의 이라크인을 학살한 1991년 2차 걸프전에 노태우는 5억 달러를 지원했고 병력을 파병했다.

노태우

김영삼은 1993년 소말리아, 1994년 서부 사하라, 1995년 앙골라에 UN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파병했다. 물론 한국군이 그 곳에서 유지하려 했던 것은 평화가 아니라 미국의 권력이었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는 미국의 침공으로 수천 명이 죽었다. 미국은 앙골라에서 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익 깡패 집단인 앙골라완전독립동맹(UNITA)을 적극 후원했다. 앙골라는 20년에 걸친 내전으로 약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유지군은 소말리아와 앙골라에서 직접 학살에 가담하거나 학살을 방조하는 역할을 했다.

김대중은 1999년 동티모르와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다. 1975년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수하르토는 동티모르를 침공해 인구 60만 명 중 20만 명을 학살했다.

김대중은 1998년 5월 인도네시아 민중이 수하르토를 타도하기 전까지 수하르토와의 관계 때문에 동티모르 독립 운동가들을 냉대했다.

그리고 지금 노무현의 ‘참여’ 정부가 부시의 전쟁, 부시의 대살육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자주적 친미’이다.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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