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청년실업자들이 말한다:
“기업과 정부나 고통분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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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지방대 법대를 졸업한 송상훈(가명) 씨는 2년이나 휴학하며 고시 공부에 전념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결국 남들처럼 취업 전선에 나섰다. 처음에는 대기업 법무팀에 지원했지만 학벌의 벽에 부딪혔고, 점점 더 목표를 낮춰 연봉이 1천5백만 원밖에 안되는 법률사무소에라도 취직해보려 했지만 그곳은 더 어린 전문대생들 차지였다.
한유철(가명) 씨는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새롭게 편입까지 했다. 하지만 1백50군데나 원서를 써 봐도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취직 시험에서 떨어진 당시 심정을 말할 때 송 씨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면접 한번 제대로 못 봤어요. 서류에서 다 짤리고 … 처음에는 사회 탓을 많이 하다가도 계속 반복되다보면 자괴감이 생기더라구요. 그게 견딜수가 없어요. ‘나는 왜 안될까?’ 나 자신한테 화가 나고.”
한 씨도 상처가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 맛보는 좌절감은 장난이 아니죠. 연말에 연기대상 시상식도 안 봤어요. 저 사람들만의 축제 같고,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더 초라해질까 봐. 친구들이랑 메신저 하면 또 떨어졌다고 하는 게 너무 창피하니까 ‘남몰래 들어가기’로 들어가죠.
“착찹함을 넘어서서 이제는 ‘내가 다시 밑에서 시작해야 되는구나. 나름으로 여태까지 열심히 살아 왔는데’ 하는 생각이 들죠.”
송 씨는 “그래도 지금은 아침에 나와서 뭔가 출근할 데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
눈높이를 낮춰라?
둘 다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가 보인다’는 이명박 식 ‘해법’에 분통을 터뜨렸다.
“월급 1백만 원∼1백50만 원 받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나라라면 아무 상관없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물가도 엄청나게 비싸고. 그리고 일단 한 군데서 일을 시작하고 나면 딴 곳으로 바꾸기도 어렵잖아요. 자기들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니까 없는 사람들 이해를 못하는 거죠.” 게다가 송 씨는 이미 눈높이를 낮출 대로 낮췄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최소한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미래를 위해 투자하잖아요. 그러니까 88만원 세대가 될 줄 알면서도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가는 거고.”
이명박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가장 성질나는 건 청년인턴제예요. 현상만 급급하게 타개하려고 하는 것이 안 좋더라구요.”
“‘인턴 독배’ 라는 표현이 있던데 정말 맞아요. 다니는 동안에는 소속감 느낄 수 있겠지만 1년 지나면 다시 실업자가 되는 거죠.
“대졸초임 삭감 발표를 보면서 기득권층이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어요. 기업 임원진들은 연봉 꽤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자기가 갖고 있는 건 하나도 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우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거죠.”
“잡 셰어링도 마찬가지에요. 박봉에다가 맨날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 임금을 삭감하고 직장을 나누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반면 대기업 상층 임원들의 [양보] 움직임은 거의 없잖아요. 진짜 많이 받는 사람들은 가만히 놔 두고 밑의 직원들 월급 잘라서 일자리 나누자, 진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부자들에게는 종부세 깎아 주고, [서민 세금으로 은행] 부실 메워 주는 데 쓰고, 반면 우리는 청년실업자 신세로 몰아가고.”
이명박 정권은 구제불능
이들은 전용 헬기 구입에는 수백억 원을 쓰면서 제대로 된 청년실업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와 부자들에게 ‘진정한’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좀 나눴으면 좋겠어요. 기업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지원하는 정부도 문제고요. 자기들 이익만 생각하잖아요. 기업들이 자기 이익을 어느 정도 포기하게 만들면서 청년실업자들 채용해 주는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씨는 일갈한다. “그 사람들 돈, 다 자기가 번 거 아니잖아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인데.”
단지 청년실업 문제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도 쏟아냈다.
송 씨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할 때는 목소리가 격앙됐다. “이명박이 옛날에 기업가였지만, 지금은 국가의 지도자잖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가 이뤄지는 건데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안 되면 무시하고 자르잖아요. 단지 광우병 걸린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협상해 와서 ‘이제는 수입한다. 끝이다. 먹어라’ 그런 식 아니에요?”
한 씨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지적했다. “[요즘] 강력범죄가 많아진다면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계층이 분리되고 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신영철 대법관 파문을 보고] ‘이명박 정권, 정말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하게 됐어요. ‘폭군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법부의 독립뿐’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사법부의 상징인 대법관이라는 사람이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의] 마수가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