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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신해철 씨의 로켓발사 경축 글을 보고

북한의 로켓발사는 냉전 해체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가해진 북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압박의 결과다. 따라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해, 그리고 적법한 국제 절차에 의해 로켓을 발사한 것이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할 일”(가수 신해철)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민족의 또 다른 일부에게는 재앙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북한 당국이 이번 로켓발사에 허비한 수천억 원을 인민을 먹여 살리는 데 사용했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민족’의 일부가 경제 위기와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굶어 죽거나 죽음을 불사한 국경 탈출을 벌이는 참상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북한 당국은 이를 체제의 결속을 강화하고 그 반대자들을 옭죄는 수단으로도 이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로켓 발사는 북한 역시 남한이나 다른 세계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적대적인 두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럼에도 ‘한 쪽에서는 인민들이 죽어 가는데 수천억 원짜리 로켓이나 발사한다’며 남한 지배계급이 북한 당국을 비난하는 것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남한 지배계급은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인하하고 그들의 온갖 추한 범죄에 대해 눈을 감고 밑빠진 부실기업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퍼부으면서, 구조조정, 복지혜택 축소,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등으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절망의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남한 지배계급과 북한 지배계급은 마르크스가 표현했듯 싸우는 “형제”들일 뿐이다.

수천의 핵무기와 군사 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끔찍한 전쟁을 벌이는 미국이 약소국의 핵무장과 로켓 보유를 금지하고 단속하겠다는 것도 위선이다. 미국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보유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합당한 방법이 아니다. 첫째, 약소국의 핵 전력으로는 결코 미국의 막강한 핵을 이길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둘째,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제국주의 전쟁이나 군사적 압력에 맞서는 투쟁에서 약소국 지배계급들은 결코 일관되게 제국주의를 반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은 핵보유 유무가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과 저항이었다. 따라서 약소국의 핵보유를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보는 견해는 약소국 지배계급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그 나라의 축적과 초착취를 강대국과 경쟁하기 위함이라며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글 말미에 신해철 씨는 “배달민족 4천3백년 역사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핵주권에 따른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고 했다. 그의 앞선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염두에 둔 립서비스인지 아니면 남한을 북한과 같은 약소국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파악할 길은 없으나 ― 남한의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 보유는 신해철 씨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 남한의 핵무장 혹은 장거리 미사일 보유가 현실화 된다면 동북아 지역의 군비 경쟁 심화와 더불어 이 지역의 정세는 한층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남한은 약소국이 아니다. 실제로 남한과 일본의 지배계급은 북한의 로켓발사실험을 핑계삼아 자국의 무장력을 강화하거나 PSI 등에 적극 참여하려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결국 동북아의 긴장은 증대할 것이다.

결국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염원하는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너도 나도 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도 각국의 지배계급에게서 정치적·조직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필요하다.

평소 간통죄·입시교육 등에 대한 남다른 견해로 신해철 씨를 그저그런 평범한 가수들과 달리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정확한 연도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성동본간 결혼을 1년간 한시적으로 합법화하면서 결혼 신고를 받아주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콘서트에 2백 쌍에 이르는 동성동본 부부를 초대해서 “왜 사랑이 범죄가 되어야하고 그것도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우리들이 고작 1년간의 합법화에 만족하며 평생을 눈물짓고 살아야 하느냐”는 요지의 연설을 했었고 그 연설을 들으며 전율한 나로서는 얼마 전 입시학원 광고에 나왔던 신해철 씨가 생경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그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비록 제국주의를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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