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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왜 체제의 실패 책임을 노동자가 져야 하는가

지난해 촛불 항쟁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의 “미친” 정책 ―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경쟁 교육, 민영화, 대운하, 방송장악 등 ― 을 반대했다. 이명박의 정책이 “미친” 것은 그가 대변하고 지키고자 하는 체제가 미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쌍용차가 2천6백50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던 날 주식시장에서 쌍용차 주가가 상한가를 쳤다.

우리는 대량 실업이 가져올 비참함과 절망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도처에서 실업과 불평등이 낳는 비극적인 소식 ― 자살, 범죄, 질병 등 ― 을 비통한 심정으로 접하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대량 해고가 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미국 정부가 1조 달러(1천3백조 원)를 쏟아 부어 은행들의 “악성 부채”를 사들일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치솟았다.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들여 탐욕스러운 은행가들의 지난날 과오를 덮어 버리는 것이 오바마 식 경제 붕괴 대처법이다.

한 펀드 매니저는 이를 두고 “승리”라고 했다. 그 정책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미국 납세자들만 고통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 투자가들이 전리품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경제학자들과 금융 기관들이 내놓는 새로운 계획은 모두 문자 그대로 도박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오바마의 이 계획을 논평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논설 제목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그런데 이 해결책이 실패하면 이미 위기의 부담을 한껏 떠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까무러치기”는 무엇을 뜻할까?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이 나라 지배계급들도 해결책을 찾느라 어둠 속을 더듬거리고 있다. 이 정부는 금융 기관과 건설사 들을 구제하기 위해 4백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거나 쏟아부을 예정이다. 29조 원이 넘는 수퍼 추경 예산도 편성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조차 이 조처가 한국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대책에서 노동자 살리기는 뒷전이다.

그런데 왜 금융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퍼붓는 막대한 돈이 실업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돼서는 안 되는가?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되는 숙련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일에 고용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지배계급의 이윤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필요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한탕 치기로 부를 쌓는 체제의 필요에 따라 일자리를 배분한다. 이 체제는 그래서 한편에서는 부가,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이 쌓이는 이윤-빈곤 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반자본주의신당(NPA)의 강력한 부상이 그 사례다.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가장 유력한 사상은 국가 개입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였다. 국제 금융 거래에 토빈세를 부과하려는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아딱; ATTAC)이 이 사상을 대변했다. 국민국가에게 경제적 권력을 돌려줘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케인스주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에서는 자본주의 반대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급진 반자본주의 정당이 대중 급진화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 당의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여론 조사에서 40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겨레〉 같은 온건 개혁주의 언론조차 최근에 시장의 사회적 통제를 강조한 헝가리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사상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신뢰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는 강력하다. 그러나 체제보다 더 강력한 세력이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 그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노동자들이 그런 집단적 힘을 언뜻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부산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힘은 다른 작업장에서도, 당장에 생산직 노동자 2명 중 1명을 해고하려는 쌍용차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데 사용돼야 한다. 쌍용차 투쟁은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 같은 것이다. 체제의 실패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쌍용차 노조 지도부는 이 과제 수행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수천 명이 얼마 안 있어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지 않은가.

올해 메이데이도 저들의 경제 위기 책임 전가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장이 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촛불의 진정한 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