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방한 강연:
반자본주의 운동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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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근에 한국에 왔던 때는 1999년 9월이었으니 겨우 3년 남짓 됐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마치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 시기가 도래한 듯합니다. 두 사건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본질을 재정의했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정상 회의에 항의한 시위였습니다. 시애틀 시위는 더 근래에 일어난 시위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꽤 작았습니다. 4만 명이 WTO 정상 회의에 반대해 시위했습니다. 노조 활동가, 환경 활동가, 그 밖의 여러 활동가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애틀 시위는 세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계 규모의 운동이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대륙에서, 이 도시에서 저 도시의 항의 시위들로 이어져 온 운동입니다. 2000년 10월에는 서울에서도 그런 시위가 열렸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운동이 이른 최고점으로 세 사건을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 운동의 앞날이 창창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라고 한 것입니다.
2001년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 회담 반대 시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지난 2년 동안 1월에 한 번씩 열렸고 다음 주에도 열릴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이 바로 그 사건들입니다.
이 운동들과 시위들은 오늘날 전 세계 지배자들이 받아들이고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경제 정설(定說)을 산산조각냈습니다. 이 정설은 1980년대에 형성됐지만 19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하고 서구 자본주의가 승리한 듯하자 전 세계적으로 제도화됐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규제가 풀린 시장이 모든 관계를 좌우하고 전 지구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시애틀 시위를 촉발시킨 WTO는 바로 이 신자유주의를 실행하기 위한 기구로서 199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WTO
WTO의 슬로건은 자유 무역입니다 ― 세계 무역의 자유화. 시장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우리 모두를 부유하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겁니다. 특히 남[빈국(貧國)을 뜻함]과 북[부국(富國)을 뜻함]의 차이를 소멸시키고, 지구적 남부라고 불리는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급속한 경제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경제력의 분배가 너무나 불평등하기 때문에, 시장을 해방하는 것은 단지 권력자들에게 권력을 더해 주고 경제적 약자는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무역 자유화, 더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국민 경제의 벽을 허물어뜨렸고, 그 덕분에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소수 다국적 기업들은 여러 국민 경제에 더 깊이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의 경제적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부인 금융 시장 탈규제화는 1990년대 말에 한국을 강타한 IMF 위기 등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데 한몫 했습니다. 제3세계 전체가 퇴보하고 말았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실행하는 주요 기관 중 하나인 세계은행에서 일하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그[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에서 일하지만 그래도 좀 정직한 사람인데, 그가 몇 년 전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그 글에서 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원리대로라면 신자유주의는 제3세계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지기 전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즉 국가가 여전히 경제를 많이 규제하던 시대에 제3세계의 평균 성장률은 연간 2.5퍼센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인 1980년대와 1990년대 들어 제3세계의 평균 성장률은 연간 0퍼센트로 하락한 것입니다.
스티글리츠
이 경제학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세계가 자기 이데올로기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요?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를 터무니없이 벌려 놓았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에서 공공 서비스를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보통 똑같은 다국적 사기업들이 모든 곳에서 공기업들을 인수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역사 내내 지속돼 온 환경 파괴를 가속시켰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결과는 이제 전 세계적인 저항을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시애틀의 시위가 중요한 것입니다.
시위가 일어났을 때 워싱턴 컨센서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시위자들을 가리켜 비효율적인 민족 경제를 지키려 하는 퇴보적이고 낭만적인 민족주의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입니다. 우선, 이 운동은 민족주의가 아닌 국제주의 운동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이 운동은 난민들과 망명자들이 민족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입국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하게 국경을 폐쇄하고 간섭하는 것은 바로 각국 정부입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게다가 이 운동은 체제 자체에 항의하는 운동입니다. 세계 사회 포럼의 슬로건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입니다. “다른 세계”, 즉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세계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인[거래되는] 세계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시애틀 시위는 정치 의식의 비약적 발전을 나타냈습니다. 시애틀 시위 전에는 특정 쟁점 또는 불만을 가지고 운동을 벌이는 수많은 연합과 시민단체들이 있었는데, 시애틀 시위를 계기로 그들은 하나로 모였고, 개별 쟁점들 사이의 연관성을 보게 됐고, 그러한 쟁점들과 불만들의 원인이 체제 자체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탈리아 반자본주의 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비토리오 아뇰레토는 자신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에이즈 운동가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적어도 이탈리아 같은 부국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약이 보급됐습니다. 그러자 아뇰레토는 아프리카 등지에 있는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거대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약에 대한 특허권을 이용해 제3세계 에이즈 환자들이 싼 값에 약을 보급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거대 제약회사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는 기구가 바로 WTO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래서 아뇰레토는 자신이 단지 에이즈 문제라는 특정 쟁점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체와 싸우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뇰레토뿐 아니라 수십만 명이 똑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발전입니다. 이것은 체제 옹호자들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의 종말”
여러분은 대부분 너무 젊어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는 미국의 우익 지식인인데 1989년에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정권들이 무너지자 역사가 종말에 이르렀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니야, 우리는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준 세계가 싫어. 우리는 다른 세계를 원해”라고 말하는 운동이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애틀 이후에 목격한 것, 즉 제 생각에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듯한 운동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은 전 세계 좌파의 중대한 쇄신과 부활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먼저 2001년 7월 제노바에서 열린 G8 정상 회담에 맞서 30만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지난해 3월에 50만 명이 그들이 “자본과 전쟁의 유럽”이라고 부른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9월에는 런던에서 40만 명이 이라크 침략 전쟁 반대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11월 피렌체에서는 유럽 전역에서 모인 1백만 명의 시위대가 다시 한 번 “자본과 전쟁의 유럽”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걸로 유럽사회포럼이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단지 시위가 점점 커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정치 의식의 변화, 급진화 과정입니다.
이러한 급진화 과정은 운동이 직면한 잇달은 도전에 대한 대응에 자극받았습니다. 이 운동이 순탄하게 발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일련의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그것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 운동은 기업의 횡포에 항의하고 IMF·WTO 등 국제 금융 기구에 도전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국민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시장을 자유화하는 것이 문제라면 국가가 시장을 다시 규제할 수 있도록 국가에 힘을 돌려주는 것이 해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지요.
ATTAC(금융거래 과세 시민연합)의 지도자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ATTAC은 프랑스에서 처음 탄생해 다른 유럽 나라들로 확산된 최초의 주요 반자본주의 운동 단체입니다.
ATTAC
ATTAC이 처음 벌인 활동은 토빈세 운동이었습니다. 토빈세의 목적은 국제 금융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부유한 금융 투기꾼들의 돈을 뺏어 예컨대 제3세계 사람들을 돕는 등의 일에 쓰는 것이지요. 토빈세를 고안한 경제학자인 토빈은 금융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국민 국가에 권력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세계화가 국민 국가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싫다면, 국민 국가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인 것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국가는 우리의 동맹자나 친구가 아니고, 오직 숙적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2001년 제노바에서 30만 명이 시위를 벌이기 하루 전에 G8에 맞선 직접 행동에 수만 명이 참가했는데, 우리는 이탈리아 시위 진압 경찰의 엄청난 폭력을 몸소 겪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카를로 줄리아니라는 시위 청년을 사살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국가는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이론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국가는 자본의 대립물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이론 말입니다. 두산중공업 같은 회사가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법을 이용해서 한 노동자를 자살로 몰아넣기까지 하는 한국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노바는 국가를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제노바 사건은 국가 폭력의 한 양상인 국내적 양상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운동은 국가 폭력의 대외적 양상인 군사력에도 직면해야 했습니다.
앞에서 저는 제가 지난번에 한국을 방문한 후로 세계를 바꿔 놓은 사건이 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시애틀이었고 다른 하나는 2001년 9월 11일이었습니다. 부시의 우익 정부는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 공격을 빌미로 미국의 거대한 군사력을 이용해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전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있었고, 이라크에도 전쟁을 벌일 것 같으며, 거기에다 동북아시아 정세도 미국 때문에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자본주의 운동은 9·11 이후 이 새로운 전쟁 시대에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에 관해 뭔가 입장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여러 부분에서 점점 격차가 커졌습니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9-11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운동이 상당한 후퇴를 겪었습니다. 여러 달, 심지어는 한 해 동안 반자본주의자들이 시위를 조직하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세계의 다른 일부 지역에서 일부 연합 단체들은 전쟁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ATTAC이 반자본주의 운동의 중추 구실을 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그러했습니다.
ATTAC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대하긴 했지만 부시 정부의 전쟁몰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했습니다. ATTAC은 무역과 금융 등의 쟁점, 즉 애초에 반자본주의 운동을 탄생시킨 경제적 쟁점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주로 이런 태도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반전 운동이 약했을 뿐 아니라, 유럽 반자본주의 운동의 진원지인 프랑스의 반자본주의 운동 자체가 지지부진했습니다.[전쟁저지연합 간사 존 리즈는 프랑스 아탁이 나중에 태도를 바꿔 반전 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편집자]
9·11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는, 특히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바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전쟁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운동이 성장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대중 항의 운동과 국가 폭력의 충돌은 그 나라 전역에서 거대한 급진화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그러한 급진화 물결은 전쟁 반대에 힘을 실어 줬고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반대 운동에, 그리고 지금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추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9·11 전에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반자본주의 정서는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반자본주의 운동 특유의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에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조직적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9·11 이후에 전쟁저지연합이 탄생해 처음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맞서, 그리고 지금은 이라크 전쟁에 맞서 일련의 대중 항의 운동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위들은 단지 평화 운동의 성격만 띤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다수 시위 참가자들은 평화라는 쟁점을 훨씬 더 광범한 쟁점들과 연관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9·11이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력과 세계적인 기업 권력이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전쟁 반대가 반자본주의 운동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넓혀 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난해 11월 9일 피렌체 1백만 전쟁 반대 행진은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배움(學習)의 과정입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특정한 결과들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와 연관짓기 시작하면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경제와 관계 있을 뿐 아니라 지정학과도 관계 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착취뿐 아니라 군사적 경쟁과 군사력을 동반하는 체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를 아주 잘 표현한 사람은 주요 세계화 옹호자이자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입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잘 알려진 표현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뒤에는 보이지 않는 주먹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맥도널드 뒤에는 맥도널 더글러스[미국의 대표적인 무기 산업체]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맥도널드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자본주의 세계화의 경제적 양상뿐 아니라 군사적 양상과도 싸워야 합니다.
특히 유럽에서 ― 단지 유럽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이러한 급진화 덕분에 운동 내부에서 급진 좌파의 입지가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는 급진 좌파 정당들이 굉장히 눈에 띄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리폰다찌오네),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그리고 제가 소속된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그들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반자본주의 운동에 정당 참여를 배제하고 있고 유럽사회포럼도 실천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이론상으로는 정당을 배제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 반대 운동을 벌이면서 상이한 조직된 정치적 견해들의 충돌을 배제할 수 있다는 모순되고 앞뒤가 안 맞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그런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피렌체는 적색 행사였습니다. 제노바 이후에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피렌체에서 좌파 정당들은 재건공산당과 SWP가 그랬듯이 온몸으로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반자본주의 운동이 발전하고 있으며 더 정치적인 운동이 돼 가고 있음을, 그렇기 때문에 전략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음을 반영합니다. 왜냐하면 반자본주의 운동이 비록 새로운 운동이지만 여러 면에서 많은 낡은 문제들과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를 변혁하려 한 모든 운동들이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전략적 문제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우선적인 문제는 체제를 변혁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체제를 조금씩 조금씩 개혁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더 체계적인 변혁을 통해 체제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지?
반자본주의 운동 내부에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ATTAC의 지도부처럼 그저 개혁만을 추구하는 세력은 국가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자본주의를 더 인간적이고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더 급진적인 세력은 ‘그게 아니다, 우리는 체제 전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첫째] 문제는, 우리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것이 어떤 세계를 뜻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 다른 세계가 지금의 세계를 좀더 인간적인 세계, 즉 개혁된 자본주의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인가?
둘째 쟁점은 우리가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원한다고 할 때 어떻게 그것을 이루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의 세계에서 어떤 세력이 자본주의에 도전할 힘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탈중앙집중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언제나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던 질문입니다. 그 답변인즉,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를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계급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노동계급은 단지 파업으로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 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대체할 집단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시민단체 특유의 조직 방식을 반영하듯 주로 탈중앙집중적 네트워크 형태를 띄고 발전했습니다. 이 운동은 또한 인터넷·핸드폰 등을 매우 창의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초기에는 운동이 기업과 국가의 허를 찌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적들은 진지해지고 있습니다. 제노바와 부시의 전쟁몰이가 이를 보여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노동계급만이 갖고 있는 집단적 힘을 어떻게 운동에 연루시키고 동원하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입니다. 노조 운동가들의 조직적 참가와 지지 없이는 대규모 시위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노동자들의 참가율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조직 노동계급이 세계 자본주의 반대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을 전략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말고도 중요한 쟁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만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 반자본주의 운동이 직면한 중요한 당면 과제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것입니다.[중략]
저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등장이 얼마나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1960년대 이래로 처음 발생한 진정한 세계적 급진화 물결입니다. 그것은 특히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했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자기 정치를 진지하게 여기는 좌파라면 누구나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자기 나라에서 이 운동을 구축하려 애써야 합니다.
시애틀 시위가 일어났을 때 유럽에 사는 우리는 관객이었을 뿐입니다. 그 뒤로 우리는 유럽에서 시애틀과 같은 시위를 조직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는 제노바 이후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돌과 급진화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이것은 남한의 사회주의자들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운동에 보태야 할 중요한 몫이 또 하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지난 2백 년 동안 전개돼 온 노동계급 투쟁의 경험을 집약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투쟁 경험에 비추어 오늘날 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전략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좌파는 부활했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우리가 사라지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입니다. 물론 스탈린주의가 애초에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1년 전에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가 본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사회 운동 단체들의 마지막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집회를 조직한 것은 MST라고 하는 브라질 무토지 농민 운동 단체였습니다. MST 운동은 국가와 지주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 탄압에도 불구하고 무토지 농민들과 빈민들을 동원해 대중적인 토지 점거 운동을 조직해 낸 대단한 운동입니다. 그들은 또한 매우 신나고 극적인 집회를 조직하는 일에도 아주 능숙합니다. 그 날 집회에서 이들은 비장한 무대극을 한 편 공연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갖가지 기업 로고들이 화형에 처해졌고 수많은 구호가 적힌 배너들이 펼쳐졌습니다. 공연이 끝날 때 그들은 가장 큰 배너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적힌 슬로건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였기 때문입니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슬로건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은행과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그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너가 완전히 펼쳐졌을 때에 그 슬로건은 뭔가 달라 보였습니다. 거기에 적힌 슬로건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오직 사회주의일 경우에만.”
Q&A
Q 주류 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정보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A 저도 자본가 언론들이 대단히 선별적이고 피상적인 세계상을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 또는 대다수 사람이 자본가 언론의 보도 내용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닙니다.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상사에게 구박받는 노동자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언론의 말을 믿기는 힘들 것입니다. 실업자들은 유명 인사들과 기업인들의 부유한 생활에 관한 기사를 읽고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의 경험과 언론의 보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그저 모순으로만 남지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언론과 교육 기관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분야는 부정적인 분야입니다.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반자본주의 운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다른 대안이 존재하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도록 고무할 수 있습니다.
정보와 시각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인터넷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자본가들은 인터넷이 그저 세계 곳곳으로 돈을 더 빨리 움직이고 우리에게 더 많은 상품을 파는 데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인터넷은 이제 반자본주의 운동에 연루되거나 매력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관점을 주고받는 도구가 됐습니다.
저는 특정 웹사이트를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보다는 여러분이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를 캐고 대안적 관점을 찾는 데 더 익숙할 테니까요.
그러나 저는 어떤 정보를 접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해하느냐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제가 가장 즐겨 읽는 신문은 영국 자본가들의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입니다. 자본가들은 사업을 하면서 양질의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신문에는 훌륭한 정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융 투기꾼들의 관점에서 그 신문을 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의 틀이고, 그러한 틀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판적 틀을 계발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이 쓴 책들 가운데는 아주 훌륭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촘스키의 책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서적들도 굉장히 많은데, 마르크스주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가 발전해 온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합니다.
둘째, 과거의 운동과 투쟁의 경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를 얻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책들을 읽으면서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이해력을 심화시키는 것도 적어도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Q LCR은 프랑스 내에서 반전 운동 조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이들도 ATTAC과 비슷한 오류를 범했는지?
A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사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반자본주의 운동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처럼 젊은 사람들입니다.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종종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며, 체제에 반대하는 운동을 원하는 젊은 사람들입니다.
한 나라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정서를 표출하고 그 사람들을 조직된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세력이 나타나느냐 여부는 어느 정도 역사적 우연에 좌우됩니다.
프랑스 급진 좌파
이탈리아는 유럽 나라들 가운데 그런 과정이 가장 많이 진척된 사례입니다.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대다수는 이탈리아 청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은 이렇습니다. 지난 번 프랑스 대선은 “복수 좌파” 연립 정부의 임기 말에 있었는데, 그 정부는 이름만 사회주의 정부고 행동은 신자유주의여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엄청난 환멸과 분노를 샀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러한 분노를 가장 잘 대변한 사람은 LCR 후보였던 올리비에 브장스노였습니다. 그는 젊은 우체국 노동자로서 같은 또래의 프랑스 젊은이들의 반자본주의 정서를 적극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LCR은 5퍼센트를 득표해 프랑스 좌파의 전통적인 대중 정당이었던 공산당보다 많이 득표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브장스노 개인뿐 아니라 대선에서 진정한 반자본주의 조직으로서 활동한 LCR의 성공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LCR은 프랑스 좌파와 어떤 점에서는 유럽 좌파의 좀더 일반적인 경험을 반영하는 조직입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유럽의 좌파 노동 운동이 패배와 후퇴를 경험했던 시기였습니다. 프랑스에서 극좌파[급진 좌파]는 특히 더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LCR은 비록 그 시기에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패배의 흉터가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방 국가들이 일련의 제국주의 전쟁을 벌였을 때 LCR의 대응은 대체로 수세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전쟁에는 언론이 동원돼 서방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등과 같은 사악한 정권들과 싸우고 있다고 떠벌이며 전쟁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래서 LCR은 자기들이 전쟁에도 반대하지만 사담과 밀로셰비치 그리고 탈레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저희 생각에 이러한 접근법은 너무 수세적입니다. 저희들은 미국이 공격하는 나라들과 미국이라는 국가 둘 중 어느 쪽이 인류에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담 후세인이 학살자이고 독재자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핵무기가 몇 개나 되죠? 단 한 개도 없습니다. 부시는 몇 개나 갖고 있을까요? 1만 개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누구의 위험을 더 걱정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보다 부시가 인류에게 훨씬 더 큰 위협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전쟁들을 대하는 LCR의 입장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LCR의 약점이라면 LCR의 대선 캠페인은 그들의 장점을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반자본주의 및 반전 운동의 틀 안에서 영국의 SWP는 LCR과 협력하고 토론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뭐랄까, 그들의 장점을 고무해 주려 했습니다.
노동계급
Q 반자본주의 운동이 노동계급 전투성 증대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지배 계급으로부터 어떤 실질적 양보를 얻어 냈는지?
A 혹시 노동자들에게 실제적인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운동은 중요하지 않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접근법이라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힘은 대단히 강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약하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 의식의 변화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대중이 급진화하는 과정의 출발입니다. 그 동안 조직 노동자들의 [반자본주의] 운동 참가는 불균등했습니다. 1999년 시애틀 시위에는 강력한 조직 노동자 단체들이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의 탄생을 자극한 것은 주로 노동계급 운동 외부의 세력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조직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성숙했음을 반영하듯, 조직 노동자들의 참가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총파업이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이탈리아 반자본주의 운동의 주된 형태인 사회포럼 운동은 이 총파업들을 지지하는 운동에 적극 참가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주요 좌파 노조 연맹이 유럽사회포럼에 적극 참가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우체국 노동조합 등 일부 좌파 노조와 영국 최대의 철도 노조가 반자본주의 운동에 점점 더 많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속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이 운동이 지닌 잠재력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이미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에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은 노동자들의 대중적 급진화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Q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자본의 국적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는데 국민들은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런 자유주의적 관점이 일면 일리가 있는데, 좌파와 우파는 연대할 수 없는가?
A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도 토니 블레어처럼 제3의 길을 믿는 듯합니다. 즉, 그는 우파와 좌파 사이에 더는 진정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목격한 것은, 특히 서구 자본주의에서는, 좌파가 대부분 파산하고 우파가 승리한 것입니다.
198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레이건과 대처가 최초의 신자유주의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신자유주의가 일반화됐고 종종 좌파 또는 중도 좌파라고 불리는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좌우를 넘어?
그러니까 좌파와 우파의 차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파가 좌파를 이기고 좌파의 커다란 부분을 흡수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새로운 좌파를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시애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발제한 내용도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좌파가 발전하고 스스로 정립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과정에서 좌파의 정당, 진정한 좌파 정당들은 중요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했듯이 우리는 역사적인 관점과 사회주의적 대안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 운동의 일부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좌파 개량주의 정당들에게도 중요한 시험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않는 정당들 말입니다. 그들은 이 운동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때때로 그들은 표를 얻으려고 운동을 이용합니다.
1년 전에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좌파임을 가장해서 표를 얻으려는 프랑스 정부 각료들이 호텔들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처럼 운동에 온몸으로 뛰어든 개량주의 정당들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민주노동당은 과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할 태세가 돼 있습니까?
Q 신자유주의가 빈익빈 부익부를 증대시킨다 해도 그것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기업들은 임금이 낮은 곳으로 시설을 옮기고 있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해지지 않을까?
저는 단지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 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만으로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힘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노동계급 내]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과 함께 나라 안에서 사회적[계급 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대학 교수, 학교 선생 등 예전에는 자신들이 우월하고 특권 있는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온갖 종류의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현재는 자신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하락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20년 전이나 30년 전보다 계급의식이 훨씬 강합니다.
질문한 사람은 또한 다국적 기업들이 임금이 낮은 나라로 투자를 옮길 때 그들이 떠나는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해를 입히고 그들이 진출하는 나라의 노동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도대체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국적 기업들 덕분에 부유해지고 있는 제3세계 나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어 볼까요? 몇 년 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의 모범 사례였습니다. IMF가 시킨 대로 다 했고, 탈규제화하고,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민영화’하고, 그 결과 특히 유럽에서 많은 자본이 흘러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동아시아의 공황 이후로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더 불리해졌습니다. 갑자기 외국인 투자가 모두 증발했고, 은행들이 무너졌고, 거액의 돈을 미화로 빌려갔던 중간 계급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 돈을 모두 잃었으며, 비록 주변부에 있는 나라지만 20세기 초에는 세계에서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축에 들었던 아르헨티나는 산산조각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해외 투자의 수혜자인 제3세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덕분에 부유해지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를 보여 줍니다.
다국적 기업의 직접 투자는 대부분 부국들 사이에서 이뤄집니다. 부국들은 주로 자기들끼리 투자합니다. 일본은 유럽에 투자하고, 유럽은 미국에, 기타 등등. 여기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예외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급속한 경제 성장이 극도의 야만과 불평등을 빚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의 경제 기적”이라는 것이 조만간 엄청난 사회·정치적 폭발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촛불시위에서도 정당을 배제하는 태도가 나타났고 세계사회포럼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당과 대중 운동과의 관계는?
촛불 시위 참가자들이 왜 정당에 적대적이었는지는 아마 여러분이 저보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확실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엄청난 반감이 존재합니다. 매우 낮은 투표율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남한에서도 김대중 정권을 경험한 뒤로는 그러한 반감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 이데올로기
그러나 유럽사회포럼이나 세계사회포럼처럼 급진적인 운동이 정당을 배제하려 하는 이유를 그런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의 태도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비록 새로운 운동이지만 과거의 잔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회포럼을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패배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적 좌파가 경험한 패배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는 커다란 혁명적 좌파 조직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스탈린주의 정치나 정설 트로츠키주의의 매우 교조적인 변형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에서 활동해 본 사람들은 상당수가 사회주의 정당 건설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특정 쟁점을 가지고 싸우는 광범한 사회 운동 연합은 그저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게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민사회”라는 이데올로기가 생겨났습니다. 그 이념은 국가와 대기업 모두에게서 자유로운, 그리고 특히 비정부기구(NGO)들이 한 부분을 이루는, 모종의 “시민사회”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대규모 NGO들은 대기업이나 국가 또는 둘 모두의 이익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민간 자선 기금의 도움에 크게 의존합니다.
여하튼, 이 모든 이유 때문에 그들은 정당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이데올로기 없는 운동이 가능하다는 착각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에서 정당 배제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다음 주에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릴 세계사회포럼에는 브라질의 새 대통령 룰라가 초청 연사로 참가할 것입니다. 룰라는 정당의 지도자, 즉 노동자당(PT)의 지도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세계사회포럼 대의원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룰라를 정당 지도자로서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초청하는 것이다. 따라서 룰라는 경우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에 속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단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정당들의 참가가 필요합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그것이 변혁을 바라는 거대한 운동이라면 그 속에서 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전략을 둘러싸고 다양한 관점과 이데올로기들이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반자본주의 운동 내에서도 이미 조직된 정치적 견해들이 있다는 의미에서 사실상의 정당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ATTAC 주위의 개량주의 파가 있고, 잠시 후에 제가 더 설명할 자율주의 파도 있으며, 재건공산당과 SWP 등의 사회주의 파가 있습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려면 서로 다른 관점을 표현하고 그것들을 논쟁하는 정당들의 가시적인 참가가 필요합니다.
물론 정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영국에서 SWP는 광범한 반자본주의 연합인 ‘저항의 세계화’를 건설하는 일에 참가해 왔습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춰 보건대 정당과 운동은 모두 필요합니다.
운동이 없을 때 정당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운동 안에서 올바른 활동을 하고, 운동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려 하고, 운동의 시야를 넓히려 하며, 투쟁의 초점을 제시하려 하는 정당은 운동을 강화시킵니다.
반자본주의 및 반전 운동의 발전을 위해 계급 중심성을 탈피해야 되고 다양한 대중을 포용하는 운동 전개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세계가 가능하려면 누구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이것은 앞의 질문과도 연관된 얘기입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특히 초창기에 보여 준 매우 탈중앙집중적인 성격은 이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그것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였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된 탈중앙집중적 연합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동 내부에는 이처럼 탈중앙집중적 네트워크 조직만으로도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조류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제가 좀 전에 언급한 자율주의 조류입니다. 그들은 특히 이탈리아에 많이 있는데, 그들은 이 운동의 탈중앙집중적 성격을 마치 운동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듯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 중에서 캐나다의 저술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쓴 유명한 글에서 “국가는 바위와 같다. 우리는 그것을 빙 돌아서 지나갈 수 있다”고 썼습니다.
다양성
하지만 우리가 지나가려 할 때 그 바위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바위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를 깔아뭉개려 한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제노바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제노바에서 국가는 자신의 중앙집중적 군사력을 동원해 운동을 공격했습니다.
제노바 시위에서 자율주의자들은 시위대와 국가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는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용감하게 국가에 맞서 싸웠지만 사태의 흐름에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제노바 사건은 자율주의 정치의 한계를 보여 줬습니다. 탈중앙집중과 다양성을 예찬하는 것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패퇴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제노바 이후로 운동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피렌체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운동을 주도한 것은 자율주의자들이 아니라 재건공산당과 ‘저항의 세계화’ 같은 급진 좌파였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자율주의자들에게 끌렸던 바로 그 청년들을 포함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본가들과 싸우려면 더 일관된 정치 운동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자유로운 형식과 민주적인 에너지에다 노동계급만이 제공할 수 있는 힘과 조직력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전체 토론 요약
여러분이 던진 유익하고 사려 깊은 질문들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이 토론에서 얻어 갈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지금이 세계적 규모에서 좌파의 역사상 매우 중대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서는 그 나라 안에서 지금껏 있었던 투쟁 경험들 — 한국에서는 1987년의 학생·노동자 대투쟁, 1997년 대중 파업, 그리고 그 뒤로 계속 많은 투쟁이 일어났습니다만 — 과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경험하고 있는 배움의 과정 사이에 생산적인 상호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치르는 싸움을 모두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공통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시 정부의 전쟁 몰이에 반대하는 투쟁입니다. 이 어줍잖은 살인마들은 단지 이라크 사람들에게만 끔찍한 전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핵 갈등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들의 위협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하는 체제의 야만성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협은 우리의 단결된 운동으로 물리쳐야 할 위협입니다.
‘다함께’라는 단체 이름부터가 우리 운동의 국제주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 그 명칭은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대파업의 구호인 ‘뚜 쌍상블’(다 함께)에서 나온 듯합니다. 우리 운동은 진정으로 세계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어코 다른 세계를 창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