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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造反有理(조반유리) - 노무현의 죽음, 대중반란은 有理한가?

프롤로그

조반유리, “무언가에 대해 반항하고 반대하는 것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구호다. 40년 전의 낡은 구호를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에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죽음과 이에 따른 대중의 행동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다.

본론

#1

노무현이 죽었다. 늦잠을 즐기던 토요일 오전 8시 반 후배가 호들갑을 떨며 알려 온 소식이다. “그래서, 뭐?” 하고 대답해 주고 자던 잠을 잤다. 20분 후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SBS는 ‘죽었다’, MBC ‘죽음 추정’이었다. 결국 9시 반에 노무현은 죽었다. SBS가 맞췄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최대한 기사를 열어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80만 명이 분향소에 다녀갔다는 기사 헤드라인까지 안 볼 순 없었다. 어쨌든 내 예상보다 2천 배나 많은 사람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경찰을 깔아 놓아선지 반이명박 구호도 심심치 않게 들려 왔다. 반이명박을 하든 안하든 어쨌든 내 눈에는 무지몽매한 대중들로만 보인다. 불과 1주 전만 해도 ‘논두렁’이니 ‘시계 주으러 가자’니 떠들던 족속들 아닌가. 초치일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던 족속들마저 ‘사람’ 노무현을 부르짓기 시작했다. 좌파 자격증 시험을 만들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몸보다 정신이 진이 빠져버렸다. 이럴려고 죽었나. 노무현은 역시 강하다. 포퓰리즘의 대마왕.

‘인터넷이 떠들썩하고 매스컴은 역겹게도 추모 행렬을 취재한 기사뿐이다. 이런 경우에도 造反은 有理한가라는 의문을 던져 봤다. 저들 중 노사모는 몇 명이나 되고 노사모 중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4백 명? 그 정도일 것이다. 이제 다시 사람들은 촛불을 들 거라고 진보진영에서는 으름장을 놓는다. 운동권은 이 민중의 ‘알흠다운’ 동력을 반이명박, 반신자유주의 운동 건설의 불길로 이어가자고 외치고 있다. 운동권의 이런 긍정론도 문제지만 대중도 문제다. 노무현의 추모행렬은 촛불과는 다르다. 광기의 기간이 얼마간 지속되겠지만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理는 없다. 단지 ‘동정’과 봉건적 사고에서 기인한 ‘임금님을 어떻게 저렇게 예우없이 대해 죽이다니’하는 지극히 감정적인 理뿐이다. 이런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전개되는 ‘造反은 有理하지 않다’하는 것이 노무현 죽음 뒤 5일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반드시 위에서 언급한 감정적인 理만으로 최근의 造反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이 지났다. 취업문은 막혔고, 아니 막았고, 행정인턴, 기업인턴으로 대학생들은 도매금에 사회로 흡수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도산하고, 초·중·고등학생들이 더욱 입시에 매달리도록 국제중도 생겨나고 〈중앙일보〉는 어김없이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우리학교도 ‘의대없는’ 대학 5윈가 6윈가를 했다고 한다. ‘개념없는’ 대학이었다면 더 높지 않았을까.)

어쨌든 노무현 추모 행렬이 80만을 넘어선 데는 이런 근저의 理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장드라마(아내의 유혹)로 그 불만을 삭혀 보던 대중은 이에 진정되지 못하고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이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 물론 이 폭발은 현재 매스컴과 정부에 의해서 잘 관리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마오의 혜안은 나 같은 학부생 나부랭이와는 달랐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는 造反들도 사실은 다 有理하다는 것이다. 문혁과정에서 일어났던 스승 비판, 의사 비판, 각종 지식인 비판같이 비이성적인 造反들도 어쩌면 우리가 문서로만 보았기 때문에 놓쳤던 ‘유소기의 조정 시기’ 속을 살아가던 민중의 억울함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다른 시대 속에서 다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번 일련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근저의 불만들을 포착해내야만 한다. 단지 감정적인 불만의 표시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광적인 혹은 폭발적인 대중의 움직임이 나타났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또 이를 매스컴과 권력자들의 관리 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이 옮겨지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된다. “상황은 명확하고 단지 명확하지 않은 것은 그 속에서 맡아야 할 역할 뿐이다” 하는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Band Of Outsiders)의 주인공 에르튀르의 대사처럼 현재 대중은 화가 나 있다는 상황은 명확하고 운동권 혹은 좌파 진영에서 맡아야 할 구실을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에필로그

造反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약자의 발악이고, 소리 없는 외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造反은 有理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더 큰 의미에서 造反은 造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자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것에서 有理한 것이다. 造反이 곧 有理고, 有理가 곧 造反인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造反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면 造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진영에서도 이런 대중의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인 造反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제 구실을 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 문장으로 맺고 싶다.

‘造反은 有理하고 그러므로 모든 造反은 有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