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투쟁 - 노조 지도자의 타협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팔아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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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을 이간질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노무현과 사용자들의 주된 지배 전략이다.
그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비난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지배자들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를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구조조정에 대한 방패막이로 여기도록 부추긴다.
분열의 결과 노동자들의 힘은 약화된다. 노동자들의 힘은 단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항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현대차의 임단투는 중요했다. 그러나 올해 임단투에서 현대차 이상욱 집행부는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가버렸다. 비정규직 독자파업에 따른 탄압에 맞서 방어는커녕 ‘사과’를 요구하며 연대를 외면했다.
이상욱 집행부의 비정규직 연대 외면은 류기혁 열사의 죽음 직후 절정에 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당해서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맸는데도 이상욱 집행부는 토를 달았다.
류기혁 씨가 ‘열사가 아니다’라는 집행부의 반동적 주장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불행한 논란 속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박일수 열사 투쟁 때 현대중공업 탁학수 집행부의 태도와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올 만했다. 곧이어 이상욱 집행부가 서둘러 잠정 합의로 임단투를 마무리지으면서 한 가닥 기대마저 허물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깊이 절망했다. “노동운동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 막막하고 절망적이다”(현대차비정규직노조 안기호 위원장)
“굉장히 절망했고 엄청난 벽을 느꼈다.”(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 구권서 의장)
이런 과정을 보면서 노무현과 사용자들은 기쁨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저들의 이간질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들 생각을 진정으로 해본 적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던 노무현의 저 역겨운 논리가 말이다.
따라서 이상욱 집행부를 단호하게 비판하고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상욱 집행부의 핵심 간부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는 좌파 단체 ‘노동자의 힘’이 9월 24일 “류기혁 열사 투쟁 국면에서 … 실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류기혁 열사 정국에 대한 노동자의힘의 입장’).
이 성명에서 ‘노동자의 힘’은 이상욱 집행부가 “정세 인식의 오류 … 열사 규정을 유보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정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쓰디쓴 진실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동자의 힘’ 동지들은 이런 결단을 통해 우리 운동에서 하나의 모범을 세운 것이다.
사실, ‘노동자의 힘’ 단체가 이상욱 회원의 배신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단체로서 ‘노동자의 힘’은 일관되게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를 주장해 왔다.
‘노동자의 힘’에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회원 이상욱의 배신을 비판하지 않고 침묵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양 노조[정규직과 비정규직]와 현장조직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과정에 결합한 총연맹과 금속연맹 등 노동조합 지도부의 행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물타기를 하고 책임 소재를 흐린 것이다(“최단기 열사정국, 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의 힘〉 86호).
하지만 이번 성명은 이런 과오에 대한 진지한 자기비판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노동자의 힘’은 회원이자 선출된 노조 간부인 이상욱 위원장과 김태곤 부위원장에 대한 징계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자의 힘’이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할 때는 그것을 지지하고 그들이 투쟁을 배신할 때는 독자적으로 투쟁하는 현장조합원 운동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발견했으면 한다.
‘노동자의 힘’은 성명에서 이번 경험이 “전계급적 사안과 투쟁을 인식하지 못하는 조합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임을 과제로 남겨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조합주의의 한계’라고 할 때는 정치 행동을 회피하며 노사관계 쟁점에 국한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실, 이상욱 집행부는 노동조합적 투쟁마저 철저히 수행하지 않았다. 이상욱 집행부의 문제점은 본질적으로 노조관료 개량주의였다.
우리는 이미 ‘노동자의 힘’이 노조관료라는 뿌리를 못 보고, 좌파 노조관료에 무비판적으로 의탁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다함께〉 54호, “‘노동자의 힘’의 산업전략 ― ‘범좌파연합’이 진정한 대안인가?”)
이상욱 집행부의 합의안에 울산공장에서만 43퍼센트의 반대표가 나왔고 전체적으로 35퍼센트의 반대표가 나왔다는 것은 이런 운동의 건설이 공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라는 중대한 과제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굳건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건설하는 게 우리 나라 노동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