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비정규직법 개악 논란:
왜곡된 구도를 깨고, 안정된 고용의 권리를 주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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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뉴코아·이랜드 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이 해지됐다. 2008년 7월 1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1년 넘게 지속될 당시, 노동부는 “비정규법이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면서 화려한 비정규직법 시행 1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 7월 1일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비정규직법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대량해고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노동부는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료를 내서 “비정규직은 노동자를 정규직화 하는 법이라고 오해하는데, 진실은 2년이 지나도록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비정규직을 위하는 법이라고 했다가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법이라고 실토하는 정신분열적인 노동부의 태도는 이 비정규직법안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렇다. 이 법안은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쓰고 해고하기 위한 법이었다. 그래서 파견허용업종도 마음대로 늘리고, 기간제 노동자들도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정규직은 언제라도 쓰고 싶을 때 쓰고 자르고 싶을 때 자르면 되는 존재이기에, 기업들은 비정규직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1년 안에 계약을 해지했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1.2년에 불과하고, 원청대기업에게 수탈을 당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평균근속년수가 1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미 2년을 넘는 비정규직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제 ‘안정된 고용의 권리’는 흔적이 없다. 비정규직은 계약해지를 당해도 항의하지 못하고 이런 해고는 기업의 권리로 인정된다. 안정된 고용의 권리를 뿌리째 흔들고 비정규직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왜곡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법의 효과다. 이 법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삶에 순응하게 되고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된다. 이런 불안정성으로 인해서 임금과 노동조건은 떨어지고 삶의 전망도 무너진다. 비정규직법은 이렇게 삶의 의지를 놓쳐 가는 비정규직들에게 ‘더 이상 안정적인 고용은 바라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법 자체가 노동자들을 쉽게 자르고 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는 사용기간 2년 제한조항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해고된다고 하면서 원인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기간제한 조차 없애고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쓰게 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그들은 비정규직 사용 2년 제한 조항 때문에 해고된 것처럼 보이는 사례만 드러낼 뿐, 노동의 불안정화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면서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는 8백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삶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비정규직법 시행 2년 동안 ‘정규직 전환 효과’가 뚜렷하므로 현행법을 유지하자고 말한다. 그들은 법이 결국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법이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극히 일부 정규직(혹은 무기계약직) 전환 사례만 보여 준다.
왜곡된 논쟁을 걷어치워야
비정규법 시행 전부터 상시적으로 일한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나 마찬가지 상태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일상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면 이 노동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기업과 정부는 이들 중 극히 일부를 정규직화하거나 혹은 또다른 비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외주화하거나 혹은 해고했다. 그것이 지난 2년간 있었던 일이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 송파구청과 부평구청 계약직들의 투쟁이 바로 그 상황에서 벌어진 정규직 전환 요구 투쟁이었다. 그 일부를 따서 민주당은 ‘정규직 전환 효과’라고 부르고 한나라당은 ‘대량해고’라고 부른다.
그렇게 정리되고 남은 상시고용 비정규직들에 대해서 최후로 정리할 시간을 벌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유예안이며, 대량해고설을 핑계로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에 대한 기간제한을 없애는 것이 정부의 속셈이다. 그러다보니 공기업에서 더 많은 해고가 상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KBS 계약직노동자들이나 주택금융공사 등 투쟁하는 비정규직들은 자신들이 상시적으로 일해 왔기에 현재의 상황에 분노를 느끼고 투쟁하는 것이다. 만약 이 노동자들이 정리돼 버리고, 이제 상시적으로 일해 왔던 노동자들이 다시 사라지고 일상적인 불안정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면 많은 이들은 더 이상 투쟁할 의지와 명분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비정규직법의 본질적인 문제를 더 많이 드러내야만 한다.
우리가 정말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저들의 말장난에 넘어가면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인정하는가, 예외적인 고용형태로 보는가’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기간제와 파견제 등 기간을 정해서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시고용과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 10년 동안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투쟁을 쉬지 않았다. 그 길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리보장 입법요구’를 만들었다. 지금 있는 기간제법을 없애고 근로기준법에 상시고용의 원칙과 사용사유를 명시하는 것, 중간착취만 합법화해주는 파견법을 없애고 직업안정법을 강화하는 것,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 개념과 노동자 개념을 넓혀서 실질적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 왜곡된 고용형태를 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책상 위에서 만든 법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나온 법이며, 이 요구가 관철돼야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절박함 속에서 나온 요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간제한 2년을 없애거나 유예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행법을 유지하고 정규직 전환기금을 줘야 하는가” 하는 왜곡된 논쟁을 걷어치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방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다. 물론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 관철돼도 비정규직은 여전히 편법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정규직이 잘못된 고용형태고 누구나 안정된 고용의 권리를 갖는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그럴 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고용불안정에 저항하는 많은 비정규직들이 생겨날 것이다. 진정한 권리는 바로 그렇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에 의해서 쟁취된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 시기에는 비정규직을 인정하고 양산하는 비정규직법이 뿌리부터 잘못된 것이며, 우리에게는 안정된 고용의 ‘권리’가 있음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