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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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저항의 날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유주의는 체제의 온갖 불합리와 불의 ― 가난, 기아, 환경 파괴, 제국주의적 침략 등 ― 를 뜻하기 때문이다.
올해 메이데이는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해 평화와 정의를 위해 저항을 벌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조선일보〉 같은 우파들은 ‘노동자들이 웬 반전이냐’며 못마땅해한다. 노동자들이 사회 운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내놓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적대와 멸시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전쟁은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구조조정 계획과 자유 무역 협상과 마찬가지로 현 체제의 일부다.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게 요약해 놓고 있다. 부시는 〈국가 안보 전략〉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국가 성공 모델은 자유, 민주주의, 자유 기업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WTO와 미주 자유무역지대 같은 지역 협정을 통해 더 폭넓은 무역 자유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경고로 끝난다. “잠재적 적들이 미국의 힘을 능가하거나 미국에 맞서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단념시킬 수 있을 만큼 우리의 힘은 강력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세계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가난과 기아를 낳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은 1990년대에 이라크와 세르비아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들을 통해 제3세계 정부들이 미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굳힌 맹주권을 내세워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무역·투자·외채 협상에서 미국의 지도에 복종하도록 강제했다.
1백여 년 전에 레닌과 부하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분석했다. 그들은 현대 자본주의가 서로 결합된 두 가지 형태의 경쟁 ― 기업들의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의 지정학적 투쟁 ― 에 종속된다고 했다.
그들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보잉, 몬산토, 마이크로소프트, 엑손모빌, GM 같은 기업들은 미국 국가(특히, 미국 군부)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측면에서 이런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다국적 기업의 지배가 위협당할 때 국가의 군사적 폭력이 버팀목 구실을 하곤 한다. 우리는 2001년 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 항의 시위에서 이것을 목격했다. 당시 시위 진압 경찰은 시위대를 분쇄하기 위해 카를로 줄리아니라는 청년을 살해하고 시위대에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반신자유주의 투쟁도 국가 폭력과 대면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2001년 4월에 해외 매각을 반대하는 대우차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리고 지난해에는 사기업화를 반대하는 발전 노동자들이 국가의 집요한 탄압에 직면했다.
이런 국가 폭력의 국외적 양상은 국민 국가 체제를 통해 세계 규모로 나타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이를 잘 보여 준다. B-52 폭격기와 미 해병대는 가난과 실업과 환경 파괴를 낳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전쟁 ― 체제의 ‘약한 고리’
그러나 적지 않은 좌파들이 경제의 세계화 때문에 국민 국가가 약화됐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아탁(금융거래 과세 시민연합)의 지도자 베르나르 카상, 〈노 로고〉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 〈제국〉의 저자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그런 사례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경제 체제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군사력을 사용하는 국가 체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9·11 이후 연속 전쟁은 이런 분석이 잘못됐음을 보여 준다. 부시 정부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부시 정부는 국제 기구들(유엔이나 나토)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또, 영-미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프랑스·독일·러시아가 주도하는 ‘동맹’이 등장했다.
자본주의는 수많은 형태의 지배와 억압을 동반한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은 미국의 전쟁을 저지하는 투쟁이다.
미국의 영구적 전쟁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세계를 유린할 수 있다면, 미국은 반신자유주의 저항에 더욱 공세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가령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반신자유주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굳이 B-52 폭격기와 특수 부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미국 군대의 승리는 빈곤과 기아에 맞선 투쟁을 약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운동이 성장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적 착취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국내적으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정치 권력과 국가의 무장 기구를 이용한다. 세계 규모에서는 전쟁의 형태를 취한다.
둘째, 운동이 승리하려면 어디에서 무엇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축적되는 ‘약한 고리’를 끄집어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변혁 정치는 전쟁과 비슷하다. 적이 취약한 곳, 즉 체제의 긴장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세계 열강은 일련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전쟁은 체제의 중심부에서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도둑질과 학살의 동업자이긴 매한가지인 다른 지배자들(시라크와 슈뢰더 등)이 부시의 전쟁을 폭로했다.
국제 반전 활동가들은 이 점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그 덕분에 국제 반전 운동은 “새로운 수퍼파워”(2월 15일 국제 저항 직후 〈뉴욕 타임스〉는 반전 운동을 이렇게 불렀다)로 성장했다. 이 운동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가 드러내는 야만을 끝장낼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이라는 야만을.
김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