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마인호프〉 영화평:
세상을 바꾸려 한 테러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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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 마인호프〉는 한 무고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폭력배들에게 추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사람은 서독 대학생으로, 그는 감히 이란 샤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에 가담했단 이유로 서베를린 경찰에 의해 살해된다.
이어 영화는 베트남 전쟁 영상을 보여 주고, 그 다음에 한 열광적 극우파 지지자가 황색 언론의 선동에 자극 받아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 루디 두치케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바더 마인호프〉는 바더마인호프단 얘기를 다룬 영화다. 1970년대 초 그들의 은행 강도, 암살, 납치는 서독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영화의 원작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쓴 스테판 아우스트의 책이다. 이 영화는 바더마인호프단의 행동이 서독과 미국이 저지른 잔혹한 폭력의 산물임을 잘 보여 준다. 이 영화는 국가 테러에는 눈을 감으면서도 개인 테러에 관해서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도덕군자들의 편을 들지 않는다. 바더마인호프는 47명을 죽였다(전부가 ‘무고’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 떨어뜨린 폭탄 한발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 영화는 바더마인호프단을 괴물처럼 묘사하지 않지만, 그들을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안드레아스 바더는 비호감형 인물로 그려진다. 한 동료가 전략에 관한 질문을 하자, 바더는 말문이 막히게 쏘아붙인다. 그는 “섹스나 총쏘는 거나 그게 그거지” 하고 소리 지른다. 군사 훈련을 받으러 요르단으로 가서 안드레아스 바더가 교관에게 “우리는 도시 게릴라야, 도시에 사막이 어딨어, 씨발” 하고 소리치는 장면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당시 얼마나 관대했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막바지인 재판 장면에서 바더는 용기와 위엄을 가지고 판사에 맞선다.
울리케 마인호프는 바더와는 상당히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재능 있는 언론인인 그녀는 ‘너는 글밖에 쓸 줄 모른다’는 야유에 자극받아 그룹에 합류했다. 마인호프는 그룹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대단히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선언문들을 썼다. 서독 언론을 비판하고 계급사회의 토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마인호프는 종종 겁에 질리고 혼란에 빠진다. 명민한 그녀는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전망이 어둡지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영화가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은 바더마인호프단이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는지다. 사실, 그들도 몰랐다. 바더는 “정치 상황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떻게 바꿀거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할 테니 잘 봐.”
서독 국가는 소규모 게릴라 집단이 상대하기에 너무 막강한 상대였다.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대중 일부의 동정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집단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바더마인호프단도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바더마인호프단은 체게바라를 모델로 삼았다. [체게바라가 무너뜨린] 1959년 쿠바 바티스타 정부는 보호자인 미국 정부에게 버림받을 정도로 극도로 부패하고 약한 정부였다. 그러나 1970년대 서독 상황은 달랐다.
〈바더 마인호프〉는 잘 짜인 영화다. 상영시간이 2시간 30분에 이르지만 버릴 장면이 없다. 폭력 묘사는 사실적이지만, 잔혹한 묘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단식농성 중인 바더에게 강제 급식을 하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며,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된 시위대에 대한 폭력 장면은 마치 바로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바더 마인호프〉는 〈알제리 전투〉에 버금갈 걸작은 아니지만, 한 번 보고 토론할 만한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