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정복에는 여전히 큰 장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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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지난 5월 1일 메이 데이에 조지 W 부시는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언론 플레이의 일환으로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의 비행갑판에서 이라크 전쟁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부시는 실제로 ‘승리’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국제법상 승리를 선언하려면 미국과 영국은 전쟁 포로를 석방하고 점령군의 다양한 의무를 떠맡아야 하는데, 미국 정부는 이런 의무를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부시는 “이라크의 주요 전투 상황이 종료됐다”고만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알-카에다의 동맹 세력을 제거하고 테러 자금의 원천을 차단했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이제 어떤 테러 조직도 이라크 정권한테서 대량 살상 무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라크 정권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찌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말한 것처럼, 거짓말은 큰 것일수록 효과가 좋은 법이다. 어느 누구도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의 동맹자”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아울러 미국의 고위 관리가 〈파이낸셜 타임스〉(5월 3일치)에서 밝혔듯이, 어느 누구도 대량 살상 무기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십중팔구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과 의기양양의 이면에서 미국은 아주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의 언론 참모들이 걸프에서 돌아오는 항공모함을 쇼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이라크를 정복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연합군은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머무를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떠날 때쯤이면 자유 이라크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곤경에 빠져 있다. 미국 지배자들은 경제적·전략적 이유에서 이라크를 지배하고자 한다. 경제적 동기는 분명하다. 바로 이라크의 석유다.
이라크는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최근 걸프 지역 순방 도중 사우디 아라비아 주둔 미군을 대부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중동 지역에서 미군이 퇴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럼스펠드는 국방장관 취임 이래 줄곧 사우디 아라비아의 프린스 술탄 공군 기지를 폐쇄하고 카타르로 재배치하고 싶어했다.
워싱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믿을 수 없는 동맹국이라고 생각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주둔 미군 철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주요 불만 사항 하나를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저강도 전쟁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중동 지역에서 다른 군사 기지들을 원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벌써 네 곳이 정해진 듯하다. 이를 이용해 미국은 시리아나 이란, 사실상 모든 주변국들에 압력을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점령을 고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근 팔루자에서 미 공수부대원들이 이라크인 15명을 살해한 사건은 이라크 민중과 ‘해방군’ 사이에서 격화되고 있는 저강도 전쟁의 위험을 분명히 보여 준다.
1982년 전쟁 이후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던 이스라엘의 선례가 미국 지배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당시 자살 폭탄 공격 등으로 이스라엘군 사상자가 꾸준히 발생하자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조금씩 철수하다가 끝내는 전면 철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게릴라 투쟁으로 이스라엘을 레바논에서 축출한 이슬람주의 운동, 즉 헤즈볼라와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무슬림 지도자들 사이에는 혈연 관계를 포함한 이런저런 연계가 있다.
후세인이 몰락한 후 전면에 등장한 시아파 조직의 진정한 힘은 미국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다. 럼스펠드는 2주 전에, “이란 정권과 비슷한 정부가 이라크에 들어서는 것은 우리의 계획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부시의 “해방” 약속이 위선임을 밝히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이라크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미국의 충돌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당초 이라크 통치자로 선발된 장성 출신 제이 가너의 상급자로 외교관 폴 브레머가 임명된 것은 상황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이다.
따라서 럼스펠드―”낡은 유럽”을 두드리는 망치였던―가 이라크에 “다국적 안정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UN의 역할 운운한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럼스펠드는 “국가 건설”을 혐오하는데, “국가 건설”은 가난하고 분열된 나라들을 관리하는 귀찮은 일이며 미국의 군사 행동은 그런 나라의 문제들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 그 일을 떠맡겨 사상자 처리 등 귀찮은 일은 유럽에게 떠넘기고 미국의 정예 부대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만 맡자는 것이다. 발칸 반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특히 프랑스와 러시아는 아무 대가도 없이 미국을 위해 불 속의 밤을 대신 꺼내 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UN 주재 미국 대사 존 네그로폰테가 미국은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프랑스나 러시아가] 후세인 정권과 체결한 계약의 일부를 존중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그런 계약이 가져다 줄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라크 점령은 럼스펠드나 워싱턴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미국 패권의 한계라는 아주 엄혹한 교훈을 가르쳐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