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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연합 - 왜 필요하고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10.28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곳에서는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연합을 최우선순위로 두면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뒷전으로 내팽개쳤다. 경남 양산 선거 현장에서 활동했던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이병하 위원장은 이 과정이 “치욕적”이었다고 표현했다(11월 13일 민주노동당 ‘2010 선거승리 전략 토론회’). 막판 부재자 투표 때까지도 민주당 입만 쳐다보느라 ‘이제 우리 후보 찍어도 되냐’는 지지자들의 빗발치는 전화에 ‘기다리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쓰라린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민주대연합(반MB 선거연합)이 얼마나 허망한 시도인가를 드러냈다. 다행히 선거가 끝난 지금 민주대연합을 비판하고 진보대연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성희 중앙연수원장,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이 대표적이다. 새세대네트워크 민경우 기획위원도 최근 ‘진보세력 강화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도 두 진보정당의 재통합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사실 진보대연합은 2007년 대선 전부터 지금까지 다함께가 일관되게 제안해 왔고 민주노동당도 2007년 대선 방침으로 채택한 바 있다. 6월 정책당대회에서도 문구상으로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론 때문에 여태 사실상 뒷전으로 미뤄 왔던 것이다. 이제는 이 과제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와 진보대연합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패배가 핵심적인 특징이었다. 민주당은 반MB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정돼 있다. 민주당의 ‘한나라당스러운’ 행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진영이 반MB 정서의 수혜를 입을 여지가 생긴다. 단, 민주대연합과 같은 ‘자해’ 전술을 쓰지 말아야 한다. 10.28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은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견고해서가 아니라, 진보진영이 민주당에 의존해 스스로 무기력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주장처럼 이명박 정부와 민주당은 “[DJ-노무현] 10년이 낳은 쌍생아”다. 진보개혁 대중은 이명박이 꼴 보기 싫지만, 민주당 집권 기간의 악행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이 분열해 각개약진한다면 강력한 견제구로 보이기 어렵다. 따라서 진보대연합이라는 대안을 가시화하고 반한나라당·비민주당 지지를 획득하려고 노력해야만 MB에 대한 반감을 진보쪽으로 수렴시킬 수 있다.

진보적 단결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울산 재보궐 선거다. 진보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진보도 뭉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 설사 울산에서처럼 이기지 못하더라도 유의미한 진보적 대안이 있음을 보여 주고 진보개혁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켜야 한다. 임성규 위원장이 전하는 노동자들의 단결 열망 분위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사실 많은 진보 대중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왜 따로 출마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진보대연합의 모델

따라서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이 일상적 공동투쟁이면 족하다는 식으로 임성규 위원장의 진보정당 재통합 촉구 주장에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진보진영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를 방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진보정당을 하나의 당으로 재통합하는 방식인 임성규·정성희 씨의 모델(“진보대연합당”)은 취지와 달리, 오히려 진보대연합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분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당을 도로 통합하라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이런 방식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두 당이 진보대연합을 회피하는 명분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때그때 한두 가지 쟁점으로 공동투쟁만 하면 된다는 주장은 사실상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더 나가지 말자는 얘기일 뿐이다.

지난 4월 울산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 후보 단일화는 진보의 승리 가능성을 보여 줬다. 내년 선거에서도 진보대연합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사진 제공 울산노동뉴스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진보진영이 합의할 수 있는 10~20가지 정도의 강령을 둘러싸고 공동전선적 방식으로 진보대연합을 하는 것이다. 그 강령에는 선명한 진보적 요구를 포함시켜야 한다. 하승창 ‘희망과 대안’ 상임운영위원은 민주당이 반대할 쟁점 ― 파병, 반신자유주의 등 ― 을 내세우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반신자유주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반대, 민주주의 후퇴 반대, 파병 반대 등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올해 출범한 ‘반MB공투본’이 합의한 12대 요구는 그 기초가 될 수 있다. 진보대연합 내에서 각 단체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행동 통일을 하면서도 독립적인 주장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델을 따른다면 두 진보정당을 해체해 하나의 당으로 통합하지 않아도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 두 진보정당만이 아니라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도 진보대연합의 대상에 포함된다. 이 모델을 통해 선거에서 공동의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 그리고 단지 선거 대응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대안적 운동 건설을 주도하는 진보적 결집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편, 정성희 씨의 주장은 진보대연합에서 출발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민주대연합과의 관계 설정을 모호하게 남겨 둔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정성희 씨는 “지역과 실정에 맞게” 민주대연합도 채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호함은 “진보대연합은 전략이고 민주대연합은 전술”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는 순간 진보대연합의 명분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의 문제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재보선 “치욕”을 겪고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이라는 엇나간 결론으로 나가는 흐름도 있다. 민주노동당 ‘2010 선거승리 전략 토론회’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사표를 낸 이상규 위원장은 진보신당과 선거연합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민주노동당 독자 후보로 완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자들은 진보신당이 연합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명분 삼아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진보신당 못지 않게 민주노동당도 두 당의 선거연합에 소극적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태도를 강화시켜 주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노동당 후보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진보 후보(박원순, 노회찬 등)의 출마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완주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은 결국 진보의 분열을 감수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진보진영 내부로 보자면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처럼 비칠 것이고, 대중에게는 일종의 허세처럼 비칠 것이다.

아이러니인 것은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자들이 진보신당과 연합에는 회의적이면서도 민주당과 연합은 여전히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대연합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몸값을 키운 후에 민주당과 연합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로 뒷걸음질치는 것도, 민주대연합을 합리화하고 재탕하는 것도, 그냥 ‘지금 이대로’를 외치는 것도 대안이 아니다. 진보진영은 효과적인 진보대연합의 방식을 놓고 지금부터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