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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관한 논쟁

논쟁 1 - 흡수통일은 진보다

이덕하

이 글에서 나는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썼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 공감한다. 이 글에서 비판한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글쓴이의 일관된 생각은 해방정국이든 현재든 남과 북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해방 정국에서] 조선 북부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81쪽)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북한은 남한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8쪽) 사회라고 한다.

나는 해방정국이든 현재든 남한 지배자들이 주장하듯 남한이 자유로운 국가도 아니었고 북조선 지배자들과 많은 좌파가 생각하듯이 북조선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한다. 둘 모두 처음부터 계급사회였고 사회주의자에게는 타도의 대상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같은 계급사회라도 좀더 진보적이고 좀더 반동적인 사회를 구분할 수 있다.

해방정국에서 “북조선 공산당은 농민들의 몇 세대째의 염원[토지개혁]을 수행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313쪽)

그리고 “1946년 2월 현재 북한의 실업자 수는 42만 800명에 이르렀고, 3개월 이상 임금이 체불된 경우가 허다했”(338쪽)으나 “[1949년 북조선에서] 노동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337쪽) 즉, 완전 고용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남한에서는 친일파가 그대로 지배계급이 된 것에 반해 북조선에서는 상당히 일관되게 친일파를 숙청했다고 한다(어쩌면 이것도 잘못된 상식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또한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북조선에서는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수만명(어쩌면 10만명이 넘게)이 미제국주의와 이승만의 총칼아래 사망했지만 북조선에서는 사망자 수가 수십명 또는 수백명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하다. 물론 그 자체로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남한에서의 엄청난 학살에 비하면 작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단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는 없다. “이처럼 소련은 더욱 확산될 수 있었던 대중적 움직임의 싹을 잘라 버렸다. 이것은 해방 직후 남한 지역에서 민중 투쟁이 거세게 분출했던 데 반해 북한 지역에서는 왜 그렇지 못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244쪽) 북조선 정권은 남한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으며 따라서 민중의 자발적인 지지를 더 많이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많은 지주들이 월남하고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월북한 것은 단지 환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글쓴이는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남한(미국)과 북조선(소련, 중국) 모두를 공평하게 비난한다. “일본 식민주의, 일본 패망 이후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미국과 소련, 그리고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중국, 소련이 모두 한반도 분단에 책있이 있다”(82쪽)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소련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대리전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한국전쟁에 그런 측면도 있었지만 두 가지 측면을 더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국전쟁이 좀더 진보적인 그리고 민중의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는 북조선 체제를 무너뜨리고 한반도를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미국 제국주의와 한국 민중 사이의 전쟁이라는 측면이다.

또 하나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은 중국혁명이 일어난(그것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중국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혁명인 것만은 분명했다) 1949년 직후라는 것이며 미국은 내친 김에 중국혁명도 분쇄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참전한 것은 혁명으로 성취한 독립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미국과 중국을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는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 성격도 있었지만 미국과 한반도 민중, 그리고 미국과 중국 민중 사이의 전쟁이기도 했다. 따라서 민족해방 전쟁의 성격도 있었다.

글쓴이는 현재의 남한과 북조선의 체제가 똑같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는 사회주의적인 통일이 아닌 통일을 지지한다면 “비록 그것이 자본주의에 머무르는 통일일지라도 불가피하게 통일(자결) 열망에 타협해 그것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112쪽)라고 말한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바가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정치, 사상,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한다.

물론 남한 사회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는 아니다. 남한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있으며 그것으로 구속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나는 후배와 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남한 정부에 아주 비판적인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데 전혀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북조선에서 이 책을 읽고 토론하려고 했다면 목숨을 걸었어야 했을 것이다.

남한 사회는 1987년의 항쟁을 거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반 정도는 얻어 냈다. 이것은 분명히 진보이다. 따라서 나는 남한과 북조선이 남한 주도의 흡수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에 찬성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민중들의 정서에 타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흡수 통일이 북조선 노동자들에게 진보이기 때문이다. 흡수 통일이 되면 “노동자들도 남북을 자유 왕래하며 서로 친교를 나누고, 서로 교감하고, 서로 단결해 전쟁을 거부하고, 서로 연대해 각자의 지배 계급과 싸우고, 서로 토론하고 공동의 조직을 건설할 수 있을”(143쪽) 뿐 아니라 북조선 노동자들이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권리와 남한 노동자가 누리는 불완전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통일은] 그 자체로 노동 계급에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135쪽)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은 그 자체로 진보이다. 특히 아무것도 누릴 것이 없는 북조선 노동자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논쟁 2 - 흡수통일은 진보가 아니다

최일붕

1989년 동구권 스탈린주의 정권들이 붕괴한 지 15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옛 소련 블록 사회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국제적 수준에서는 더는 구체적 정치 쟁점이 아니라 역사 쟁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라는 지역 수준에서는 북한 사회의 본질이 문제가 되곤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논의는 냉전이 끝난 1990년대 대부분 동안 미국·일본·중국이 주역을 이루는 훨씬 더 넓은 동아시아 지역 문제로 다뤄지곤 했다.

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북한은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김정일 등장까지 정권 이양 과도기이자 제네바 합의 국면인 1990년대 중엽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속죄양이 돼 있다. “악의 축”의 일부로, “불량 국가”로 터무니없이 매도당하며 고립과 봉쇄의 위험에 처해 있는 애먼 제물 말이다.

그래서 지난 6년간 남한 국민 가운데 좀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게서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붉은 위협’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애꿎게 초강대국에게 핍박당하는 ‘이라크와 비슷한 이웃 나라’라는 이미지를 연상하게 됐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의 패배는 〈조·중·동〉의 외관상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가 북한을 대립하고 배척해야 할 ‘무시무시한 사회주의’로 대하기보다는 화해하고 협력하고 평화적으로 함께 번영해야 할 파트너로 대하기를 선택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이라크보다 군사력이 훨씬 더 강하며 주민의 대미 저항 의지도 더 강해, 미국이 만만히 볼 상대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은 중장기적으로는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보다는 다른 가능성, 곧 한반도 주변 열강 사이의 핵무기 경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망 속에서 봤을 때 이덕하 동지처럼 남한의 북한 흡수 통일(‘병합’이 더 정확한 말이지만, 흔히 통용되는 표현을 따르겠다)을 단지 남북한 간의 민주화 정도 ‘차이’만 갖고 지지할 수 있을까? 남한의 북한 흡수 통일은 (용케도) 미국의 승인을 받든 안 받든 간에 관계 없이 동북아에서 새로운 소열강의 등장을 뜻한다. 세계가 서로 군사적·경제적으로 투쟁하는 자본주의 열강로 이뤄진 체제임을 상기한다면 남한의 흡수 통일이 주위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 그에 따라 통일 한국도 연루되는 ― 군비 경쟁을 부를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제국주의

이덕하 동지는 “좀더 진보적인 계급 사회”와 “좀더 반동적인 계급 사회”를 구별하려 한다. 자본주의가 명실상부한 세계 체제가 된 제국주의 시대 전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는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부를 지지했다(물론 비판과 함께).

하지만 제국주의 하에서는 나라간 사회 체제의 차이가 부차적이다. 가령 1930년대에 이탈리아가 아비씨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였을 때 트로츠키는 아비씨니아가 노예제 사회이고 황제(하일레 셀라시)에 의한 전제 정권이라 해서 이탈리아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독재 정권 이라크에 반대해 ‘민주주의’ 미국 편을 드는 것이 옳은 입장은 아닐 것이다.

언론·출판·집회·결사와 노동조합 결성 등 민주적 자유권이 허용된다 해서 미국과 남한이 이라크와 북한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형태가 권위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그 본질은 자본가 계급의 독재이다. 미국은 일상적으로 흑인 인권을 유린하고, 사형 집행 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세계 2위를 다투고, 인구 대비 재소자 수가 가장 많고, 콜롬비아와 중동 등 국외에서는 마약과 대량 살상 무기를 빌미로 후세인과 김정일의 탄압보다 수만 배나 많은 탄압을 한다.

과거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진보적?

이덕하 동지는 북한이 과거에는 남한보다 더 ‘진보적’이었다고 보는 근거로 토지개혁, 완전 고용, 친일파 숙청, 더 평등한 분배, 더 적은 탄압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설사 사실이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반론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면 제약상 앞의 세 근거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철저한 토지개혁을 이뤘다 해서 19세기의 프랑스는 그렇지 못했던 영국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였는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 동안 서방 자본주의는 장기 호황과 완전 고용을 구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가 좀더 진보적인 사회였는가?

북한에서 친일파가 월남 등으로 사라진 건 사실이지만, 새로운 지배 관료가 친소파·친중파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문제가 안 되는가? 물론 북한 관료들이 중소 분쟁의 틈새를 뚫고 종주국들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남한의 지배 계급이 오래도록 미국에 종속돼 있던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산업화가 노동 계급에 의미하는 바는 한편으로 남북한 모두에 자본 축적의 자율적 중추가 확립됐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1956년 헝가리 노동자 혁명, 1968년 프라하의 봄, 1980년 폴란드의 연대노조 총파업을 지지하지 않고 소련을 지지한 것이 민족 문제에서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동서 제국주의간 국지적 충돌이라는 측면과 민족해방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는 이덕하 동지의 주장은 모호하다. 분명하게 말하면, 한국전쟁은 처음 5개월 간은 민족 해방 전쟁이었으나 미국과 중국(그리고 부차적인 소련)이 충돌하게 되고부터는 제국주의간 전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중국이 자신의 반제국주의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개입한 것은 맞지만, 혁명 후 중국 자신이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변신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바로 몇 년 뒤에 수소폭탄을 보유하게 될 강국을 여전히 반(半)봉건·반(半)식민지로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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