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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에서 새로운 시위가 시작되다

불과 몇 달 전 일부 사람들은 이란의 개혁 운동을 ‘구찌 군중’의 운동, 즉 이란 상층계급의 운동으로 폄하했다. 그들은 패배한 대선 후보 무사비의 후원자가 신자유주의자이자 과거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이란 측 인사였던 라프산자니라는 점에 주목해 이 운동을 폄하했다. 그들은 이 운동이 과거의 이른바 ‘색깔 혁명’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지배자들 내 신자유주의 분파들이 대중을 동원해 시위를 벌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몇 번의 상징적인 시위를 벌인 뒤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예컨대, 2005년 레바논의 ‘백향목 혁명’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당시 레바논의 부르주아지는 시리아 출신 하인들의 수행을 받으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이 시위를 찬양했다. 그러나 레바논 부르주아지의 행동은 곧 훨씬 더 규모가 큰 헤즈볼라 지지자들의 시위에 압도당했고 대중 운동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오늘날 이란의 운동을 이런 ‘색깔 혁명’과 비교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먼저, 친정부 민병대가 고문으로 얻은 일부 사람들의 ‘자백’을 제외하면 미국 정부가 이 운동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

둘째, 이 운동이 단순히 ‘매판 부르주아지’의 반란에 불과하다고 규정할 이유가 없다. 아마디네자드는 이란 노동계급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다. 더구나, ‘색깔 혁명’과 달리 이 운동은 일부 대도시 중심부에서 상징적 시위를 벌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항의 행동은 가난한 노동계급 거주지로 확산됐다. 설사, 이 운동이 중간계급에 한정된 운동이었을지라도 나는 이 운동을 지지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운동이 무사비나 그를 후원하는 자본가 분파를 옹호하는 행동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은 국가의 잔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해도 지속됐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알쿠드스의 날’(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를 보내는 이란의 공휴일)에도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이것은 참으로 적절한 시위였는데, 거리의 시위대가 아마디네자드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훨씬 나은 동맹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란 시위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가장 정치적이고 선진적인 노동자 집단이 정부의 집중 공격을 받는 동안 학생들의 전투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이란 시위의 성격에 대한 논쟁에서 일부 사람들은 ‘학생’을 ‘중간계급’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란 혁명의 성과 중 하나는 고등교육의 폭발적 증대였고 대학 진학은 더는 특권층에 편중된 현상이 아니게 됐다. 사실, 유럽의 일부 대학생들의 급진화가 노동계급 출신 학생들의 유입과 연관돼 있는 것처럼, 이란 학생들의 급진주의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가난한 출신 배경과 졸업 후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없다는 전망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몰락하는 중동의 구질서

어쨌든, 이번에 아야톨라 몬타제리가 크리스마스 직전에 죽었을 때 무언가 행동이 발생할 것은 분명했다. 물론, 몬타제리는 좌파가 아니다. 이슬람 혁명 초기에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주장했던 인사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그는 1980년대 이란 정부가 수감자 수천 명을 처형한 것을 포함해 무자비한 정책을 펼칠 때, 이에 반대하고 이란공화국이 좀더 ‘인간적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만 루시디에 사형을 선고했던 파트와[이슬람법에 따른 결정이나 명령]에 반대했고 1990년대에는 개혁파 운동의 후원자가 됐다. 그는 툭하면 반동적 결정을 내리는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비판했고, 그 때문에 가택에 연금됐다.

이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란의 여성, 노동자, 이슬람주의》(마르얌 포야, 책갈피)를 추천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아마디네자드의 ‘재선’에 반대하는 파트와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운동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단지 추모에 머물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동을 조직했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시위대가 주요 거리를 완전히 장악했고, 몬타제리의 고향 나자파바드, 이스파한, 잔잔 등에서도 장례 행사를 막으려는 경찰에 맞서 싸웠다. 이란 정부는 늘 쓰던 수법으로 대응했다. 〈르몽드〉의 보도를 보면, 12월 27일에 시위대 8명이 죽고 3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죽은 이 중 무사비의 조카가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지난 6월에 이란 정부의 피의 학살이 운동을 잠재우지 못했는데 이번이라고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운동이 단순히 또 다른 ‘색깔 혁명’에 불과했다면 운동이 이렇게 지속될 수 없다. 이 운동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의 친미 정권에서 이란의 이슬람 정권까지 중동의 구질서는 몰락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현 이란 정부의 대안은 친미 정부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 이란 지배자들이 제국주의에 맞선 최선의 전위라는 황당한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란 개혁파들은 미국 정부의 부하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성공은 미국 정부가 이란을 제재하고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미국 정부의 압력이 지속되는 한, 이란의 그 어떤 사회 계급이나 연합체도 더 좋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을 거라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은 언제나 ‘발전’이나 ‘사회주의’의 미명 아래 대중을 억압하는 독재자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출처 Lenin’s Tomb | 번역 김용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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