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한국군 파병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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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 구호자금으로 유명 패션모델 한 명이 낸 것보다 적은 ‘물경’ 1백만 달러를 내놓고 여론의 비판을 받더니 민간 모금을 포함시키는 사기를 쳐서 (그래도 고작) 1천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생색을 낸 이명박 정부는 유엔평화유지군(PKO) 파병 결의안이 유엔에서 통과되자마자 바로 아이티 파병을 고려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자린고비 정부가 드디어 개과천선한 것일까?
지금 아이티는 생필품, 의약품, 구호 장비가 모두 턱없이 부족하며, 국제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라도 지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치안’ 명목의 병력 파견은 고통 받는 아이티인들의 필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병력 파병을 결정한 유엔 결의안뿐 아니라 미국이 1만 2천 명을 파병하고 프랑스가 군함을 2척 보내고 브라질이 추가 파병을 결정하는 등 최근 며칠 동안 아이티 ‘지원’ 움직임이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것은 열강, 특히 미국이 2004년 쿠데타로 들어선 현 아이티 정부에 대한 아이티인들의 정당한 분노를 억누르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자신들의 계획 ─ 강대국 패권 확대와 신자유주의 확산 ─ 을 관철하기 위해서다.
지진 이후 파병된 미군은 이미 점령군으로 행세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미국의 관제요원들이 주요 구호물품을 실은 항공기를 돌려보내 생존자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 하고 폭로했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군 파병의 목적이 단순 구호가 아니라 아이티 난민의 미국 유입 억제와 베네수엘라 좌파 정부의 영향력 확대 견제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린고비
이런 강대국들의 계획의 일부인 PKO는 점령군으로 행세할 것이다. 이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2004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몰아낸 쿠데타 정부를 지원하려고 파견된 유엔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은 점령군으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현지인들의 원성을 샀다.
예컨대, 국제 아동 지원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2008년 유엔군이 파병된 아이티, 코트디부아르, 수단의 어린이 3백40명을 조사한 후 그중 3분의 1이 점령군에 의해 성적 학대를 당했음을 발견했다. 비슷한 폭로가 반복되자 유엔 자신이 아이티 주둔군의 성폭행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요 며칠 동안 아이티인들의 ‘약탈 행위’에 대한 보도가 늘어난 것도 이른바 ‘치안’ 명목으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군불 때기용’일 가능성이 높다. 유엔군 자신이 물자 보급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상황에서 아이티인들이 잠겨 있는 상점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을 약탈이라 부르는 것은 위선이다. 또, 지금껏 서방 정부들이 온갖 거짓말로 파병을 정당화해 온 것을 볼 때 그런 보도 중 상당수는 거짓말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월 18일치 〈인디펜던트〉에 보도된 ‘아이티 경찰이 굶주린 생존자에게 총을 쏘다’란 기사를 보면 이른바 ‘폭력 사태’의 실질적 책임은 아이티 대중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파병 결정은 열강의 계획을 도와 한국의 ‘국격’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이라크 파병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최근의 해외 파병 움직임과 하등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