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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노출된 동유럽 경제

세계 경기 침체로 동유럽의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세르비아 사회주의자 안드레야 지브코비츠가 동유럽 경제의 성격과 문제의 원인을 살펴본다.

세계 경기 침체로 동유럽의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세르비아 사회주의자 안드레야 지브코비츠가 동유럽 경제의 성격과 문제의 원인을 살펴본다.

동유럽과 러시아를 휩쓴 경제 위기 탓에 지난해 열린 1989년 동유럽 혁명 20주년 기념행사는 흥겹지 않았다.

1989년에 일당독재 정권들이 타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유시장이 승리했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와 사회주의가 패배했다고 봤다. 심지어 좌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유럽 혁명으로 번영과 성장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동유럽 경제는 파탄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먼저, 동유럽의 이른바 공산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사회주의의 핵심 사상은 노동 대중 자신의 행동으로만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노동 대중이 스스로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생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체제가 사회주의다.

이와 달리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일당독재 국가들은 민중 혁명이나 노동자 통제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 이 국가들은 스탈린의 적군(赤軍)이 나치 독일에 승리한 덕분에 생겨났다.

그러나 소련군은 토착민들의 해방 운동을 지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가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들에서 그랬듯이 나치 권력이 무너질 때 나타나기 시작한 대중 저항 조직들을 분쇄했다.

전후(戰後)에는 소련에 복종하기만 하면 공산당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출세주의자들과 나치 부역자들이 공산당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특히 공산당이 소수 정당이었던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동유럽 국가들은 옛 소련 스탈린주의 체제를 경제 모델로 삼았다. 소련에서 그랬듯이 동유럽에서도 노동자들은 새로운 지배계급, 즉 국가 관리들과 경영자들에게 착취당했다.

국가 개입

동유럽의 경제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 이 체제의 작동 원리는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서방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이었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 뒤 모든 국가들이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산업이 국유화됐고, 우선 발전시킬 부문에 투자가 집중됐다. 핵심 산업들은 국가의 보호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됐다.

따라서 동유럽 블록은 오늘날의 흔한 설명과 달리, 세계경제 체제의 스펙트럼에서 일탈적 형태가 아니라 극단적 형태였을 뿐이다.

1950∼60년대에는 중앙집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시장 지향적인 서방 경제들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생산적 부문보다 군사적 부문에 더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성장이 결국 정체의 토대가 됐다.

동유럽 블록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경제 안에서는, 심지어 옛 소련 같은 대규모 경제도 국내 자원만으로 축적을 지속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의 소비를 강제로 억제해서 투자율을 늘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듭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의 반발은 결국 반란이나 혁명으로 터져 나왔다. 1953년 베를린, 1956년 헝가리, 1970∼71년과 1980∼81년의 폴란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동유럽 국가자본주의 체제들은 세계 시장에 더 깊숙이 편입할 수밖에 없었고, 서방과 경쟁할 수 있는 설비와 기술을 수입할 비용을 마련하려고 막대한 차입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일은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시작돼 1970년대에는 동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동유럽 국가자본주의 나라들은 두 가지 위험에 노출됐다. 한편으로, 이제 이 나라들의 경제 성장은 세계경제의 리듬에 의존하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시장에서 생산 원료를 수입하고 수출 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성장의 원천이 고갈되면 국내 경제 안에서는 자원을 전용할 방법이 없게 됐다.

그리고 그런 위험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수출 주도 성장 계획은 1974∼75년과 1980∼81년의 심각한 세계 불황으로 파탄났다.

게다가, 동유럽 국가자본주의 나라들은 무역량이 늘긴 했지만 전후 호황 때 성장한 국제 경제 네트워크에서 매우 불리한 처지였다.

1970년대에 이르면 순전히 일국적으로 조직된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끌어모을 수 없었다. 당시 세계 시장에서는 미국과 서유럽·동아시아 각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자국의 지원을 받으며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유럽 국가자본주의 나라들은 성장의 재원을 조달하려고 세계 시장에 점점 더 의존했지만, 바로 그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1980년대 대부분의 기간에 외채의 덫에 걸려 정체하다가 결국 붕괴했다.

그러자 옛 공산당 관료들은 신자유주의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외국 자본에 문호를 개방하는 신자유주의를 투자 문제의 해법으로 여겼다.

전에는 설비와 기술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무역 적자가 생겨났고, 수출로 그것을 만회해 보려 했으나 늘어나는 외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외채 상환을 위해 수출 능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권장됐다.

1989년에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1980년대 초에 폴란드 연대노조를 분쇄한 쿠데타 주모자)이 말했듯이 국제 경쟁을 위한 구조조정 비용을 전부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는 방안은 시장 체제로의 전환을 약속하는 것뿐이었다.

팀 손더스 일러스트

체제 ‘전환’

일당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1989년 혁명이 공장·정부·병영에까지 미치지 못한 채 중단되고 권력의 요새들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지배계급은 공산당 당원증을 버리고 ‘내부자 민영화’[국유기업을 민영화할 때 외부 투자자들이 배제되고 기존 경영자들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것]를 통해 옛 국유 재산을 계속 통제할 수 있었다.

국가 관리들은 서방 다국적기업들의 자문위원이 됐고, 서방 은행과 자회사의 이사회에서 한 자리씩 얻었다. 한편, 기존 경영자들은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이제 민영화된 기업들과 거래하는 수익성 좋은 위성기업[협력업체]들을 설립할 수 있었다.

분명히 소수 특권층은 새로운 경제 상황 덕분에 커다란 이익을 챙겼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1990년대 내내 엄청나게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민영화 덕분에 경영자들과 관리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이런 민영화도 오래된 투자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첫 번째 민영화 물결이 일어났을 때는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경쟁적인 부문들, 예컨대 자동차 생산 부문 같은 데서 선별적으로 민영화가 추진됐다.

그러나 다국적기업들의 생산망에 편입됐다고 해서 동유럽의 무역이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민영화 물결이 일어났을 때는 도매업·소매업·운송업·통신업·금융업·은행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국가독점기업이 민간독점기업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런 ‘비(非)교역’ 부문[제조업과 달리 국제 교역에 장애가 많은 서비스업]들은 수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투자 형태는 수입 규모를 늘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외국 투자와 신용의 유입으로 가계 부채 증대, 무역수지 적자 증가, 값싼 신용의 끊임없는 유입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한 성장이 나타났다.

이런 모습은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몇 해 전 소비 호황에서 가장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따라서 2000년대의 호황은 사상누각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불황의 심각성을 볼 때 수출 위기와 신용 경색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처럼 다국적기업의 생산 기지가 있는 나라들에서 불황이 심각하다.

거품

그러나 가장 재앙적인 상황에 처한 곳은 주로 소비 호황과 신용 호황을 바탕으로 성장했던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이다.

1970∼80년대의 외채 위기가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무역 적자를 동반하면서 더 큰 규모로 돌아왔다. 서유럽 은행들은 동유럽에 9천9백40억 파운드[약 1천 8백80조 원] 상당의 손실 위험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2009년에만 2천5백70억 파운드[약 4백86조 원]를 빌려 줬다.

서방의 국가들은 동유럽의 채무불이행으로 새로운 은행 파산 물결이 일까 봐 두려워서 저금리 자금을 공급해 자국 은행들을 떠받치고 있다. 패닉 상태가 끝나고 신기루 같은 안정이 찾아오면서 ‘신흥 시장’에 대한 금융 투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새로운 사상누각이 세워지고 있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서방 은행들의 부채와 새로운 투기의 대가를 이중으로 치르도록 강요받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다.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도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연금수급자들의 급여가 동결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돼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외채 위기 덕분에 러시아는 다시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1997∼98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는 핵심 에너지 산업들을 재국유화했고,이를 바탕으로 동유럽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놓고 서방과 경쟁을 벌였다.

러시아는 2008년에 그루지야와 전쟁을 벌였고, 지난해 겨울에는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던 것을 중단했다. 지금 러시아는 부채에 허덕이는 세르비아에 수십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면서 발칸 반도에 IMF와 서방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응하고 있다.

또다시 동유럽은 서로 다투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의 속죄양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저항 운동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자본가들의 아귀다툼에 반대할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 열강이 부추기는 대리전에도 반대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오래된 구호를 다시 외쳐야 한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반대한다. 국제사회주의만이 대안이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 번역 이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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