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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대중 소비 사회》

《광고와 대중 소비 사회》, 스튜어트 유엔, 나남 

1997년에 우리 나라 광고 시장의 규모는 약 5조 3천7백69억 원이었다. 하루 평균 자그마치 1백47억 원이 광고비에 쓰인 셈이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1997년은 IMF 위기로 기업이 대량 해고 계획을 쏟아 내던 때였다.

광고비가 일자리를 늘리거나 교육 의료 서비스 개선에 쓰인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광고는 기업주들에게는 전혀 낭비가 아닐 뿐더러 없어서는 안 될 장치다. 이 책 《광고와 대중 소비 사회》는 광고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1920년대 미국의 상황을 통해 왜 기업주들이 그토록 광고에 집착하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의 장점은 광고를 주제로 한 수많은 책들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물음들을 제기하는데 있다.

광고는 왜 생겼는가? 광고는 소비자에게 유용한가? 광고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도와주는 정보를 제공하는가? 광고는 진실인가? 광고는 중립적인가?

저자는 광고를 산업 사회(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파헤치는 올바른 분석틀을 사용해 이 문제들에 답한다.

1부 ‘광고는 사회적 산물’에서 저자는 대량 생산이 정착되고 생산력이 증가함에 따라 대량 소비 문제가 제기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광고가 전면에 부상했다고 말한다.

2부 ‘소비의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저자는 광고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데 주요 수단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광고는 상품 판매를 촉진하려는 초기의 목적을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활 속으로 확장돼 소비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심어 놓았다는 것이다. 광고는 대중 의식의 조작 수단으로, 즉 정치 ‘선전’ 수단으로 이용됐다.

특히 저자가 광고와 노동자 통제를 연결시켜 광고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는 것을 신선하다. 저자는 “모든 산업 문제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 즉 피고용인을 다루는 문제”라는 기업주들의 고민에 착목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전투적인 미국 노동 운동으로 골머리를 썩던 기업주들은 새로운 사회 통제 수단이 필요했다. 전통적인 노동자들의 의식에 도전하고 기업주들이 원하는 새로운 산업 사회의 규율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즉 광고는 “파괴자인 동시에 창조자”로서 기업주들에 의해 고안됐다.

“단일 민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단일 국가를 형성하는 데 비교적 수월했던 유럽에 비해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에서 광고는 사상의 동질화를 통해 전국민의 동질화에 크게 기여했다.” 기업주들은 미국 사회의 수많은 이주자와 이민 1세대를 향해 광고가 할 수 있는 정치적 기능이 “볼셰비즘에 대한 대응책이 바로 광고”라고 단정하고는 광고를 미국화를 위한 기본 과정의 하나로 봤다.

저자는 광고의 가장 큰 기능이 사람들의 소망을 조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광고는 생산 현장에서 겪는 좌절감, 사회 생활에서 불안감을 겪는 노동자에게 ‘욕구’를 부추기고 시장에서의 소비 ‘습관’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기업주들은 사회심리학자들을 고용해 소비에 저항하는 태도를 없애는 방안을 연구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현대 상업 PR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모든 사람은 기계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여론을 조종할 수 있는 ‘대중심리학’의 실행을 주창했다. 이 사회심리학자들은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에게 “근시안적” 관심을 갖게 해 겉으로 “폼나는” 것들을 소비하도록 만든다.

이 심리학자들은 “주어진 상황에 갇혀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겪는 좌절감을 없앨 수는 없지만, 이 좌절감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 위험하지만 소비가 이를 승화시키는 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전반적인 생활 방식이나 직업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옷에 라인 하나쯤 넣는 것이 구원이 될 때도 있다.” 우리는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새 옷을 사는 것으로 자신이 처한 답답함을 풀어보려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소비 이데올로기는 사회 통제와 상품 유통의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했다. “소비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했다. 소비주의는…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소비주의의 핵심은 노동자와 대중을 단순히 노동자 또는 생산자로만 보지 않고 소비자로 간주한다.”

생산 영역에서 모든 통제권을 박탈당한 노동자 소비자가 소비 영역에서 소비자 주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다. 소비자 운동의 핵심 약점은 기업주들이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주입하려는 생각, 즉 생산 영역과 소비 영역의 철저한 분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 노동 운동이 반자본주의적 성격에서 체제 내 개량으로 나아간 것이 기업주들이 이 시기 광고를 통해 전개한 끈질긴 이데올로기 캠페인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암시한다.

“노동 현장 내의 현실은 소비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행복의 느낌을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업적 광고의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런 현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한 노련한 카피 라이터는 이렇게 충고한다. “어떤 제품을 광고하게 되더라도 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은 절대 보지 말라.…일하고 있는 사람도 보지 말라.…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내부의 진실을 알고 나면 막상 제품의 판매를 결정하는 제품의 특성에 대해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1920년대 소비경제학 분야에서 ‘한계효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자 상품이 직접적인 사용에서 파생되는 가치보다는 “정치화된” 가치 개념이 광고를 통해 조장됐다. 광고에서 직원이 “사장님, 파이프 담배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함으로써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파이프 담배를 애용하며, 소비자가 이 파이프 담배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사람과 똑같아질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한다.

산업이 정해 놓은 소비 규범 중 하나인 패션 유행에 따르기를 거부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고집을 피운다면…직업이 있을 경우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영업 사원이라면 고객을 놓치게 될 것이고, 정치가라면 지지하는 유권자를 잃게 될 것이다. 의사와 변호사라면 환자나 의뢰인이 줄어들 것이다. 그는 모든 친구를 잃을 것이다.” 하고 말이다.

광고는 돈 있는 사람의 소비를 부추기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광고는 산업 사회에서 불만을 품을 소지가 있는 곳은 모두 도려내어 기업의 헤게모니에 위협이 되지 않는 영역으로 그 불만을 전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