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범죄 100일 소탕 작전' - 노동자 운동을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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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부터 신문 사회면들은 납치살인·어린이 유괴·떼강도 등의 무시무시한 말들과 함께 범죄가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몇 주 만에 갑자기 사회 전체의 범죄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일까? 통계에 의하면 작년 ‘5대 강력범죄’는 총 47만여 건이었다. 올 들어 현재까지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20여만 건으로 작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갑자기 사회 전체가 범죄로 인해 위기에 빠진 양 말하면서 ‘강력 범죄 소탕 100일 작전’을 선포하고, 조직 폭력배를 소탕하기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13년 만에 다시 만들었다.
노무현은 6월 17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은 조폭 등 민생침해사범을 발본색원해 서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힘써 달라” 하고 말하면서 “법질서를 무시하고 집단의 힘을 악용해 이익을 관철하려는 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 하고 지시했다. 이것은 ‘강력 범죄 소탕 작전’이 노동자 투쟁을 겨냥하고 있음을 뜻한다.
범죄가 증가하고 악랄해지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자아낸다. 그리고 정부는 범죄에 대처한다는 이유로 경찰력 강화를 정당화한다. 국가 탄압을 강화하는 데 ‘민생 치안’만큼 좋은 구실은 없다.
노무현이 ‘조폭 검거령’을 내린 것과 같은 시기인 6월 16일, ‘전국 경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그동안 시위 현장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시위대가 30분 이상 도로를 점거할 경우 곧바로 진압부대를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6월 5일 경찰청장 최기문은 “앞으로 시위가 지나치게 폭력성을 띨 경우 최루탄 사용을 검토할 수 있다” 하고 위협했다.
탄압
‘범죄와의 전쟁’의 원조는 노태우다. 1990년 당시 보안사가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있다는 것이 윤석양 이병에 의해 폭로되자 노태우 정권은 거대한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됐다.
노태우는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 10월 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즉시 대학과 노조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모든 외근 경찰관에게 총기를 휴대케 해 총기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잇달았다. 노태우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헌병 8백70명이 서울시내 20개 지역에서 M16 소총을 지닌 채 순찰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탄압은 결국 명지대생 강경대를 시위 현장에서 살해해 1991년 5월 투쟁을 촉발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신창원의 탈옥을 빌미로 한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다. 1998년 여름 신창원이 서울에 나타난 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체 경찰의 절반 가량인 15만 명이 동원된 대대적인 검문 검색이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 사무총장인 고영주 씨를 비롯해 수십 명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구속됐다.
‘범죄와의 전쟁’은 실제로 범죄를 줄이지 못한다. 1990년 총 범죄건수가 1백17만 5천1백78건이었던 반면, ‘범죄와의 전쟁’이 벌어진 1991년의 총 범죄건수는 1백23만 3천3백83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경찰은 부자들의 생명과 재산은 보호하지만 우리의 생명과 재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경찰 자신이 살인·강간·폭행과 연관된 경우가 흔하다.
범죄는 경쟁과 탐욕, 착취, 소외에 기반한 경제에 붙박이 장롱과 같은 존재다. 노무현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범죄 소탕’이 아니라 우리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