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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연합을 위해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레프트21〉에서 민주대연합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이 필요하다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진보대연합이 실현돼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진보대연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접했습니다.

“민주당은 절대 믿을만하지 않다. 진보진영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진보진영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서 민주당과 연합해야 한다. 그 대가로 진보정당들은 국회에 다수 진입해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적절한 법률을 제안하면 진보진영이 무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지지와 영향력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선거만을 위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연합할 경우에 실제로 진보정당이 의석을 10석 이상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진보진영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대안에 대한 믿음을 주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진보대연합을 당장의 과제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달성해야 할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이같은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민주대연합은 진보대연합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립물입니다

장호종 rednuc@ws.or.kr

‘진보대연합을 위해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민주대연합론과는 다른 맥락이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선거가 가까워지고 그전에 진보정치대통합이 실제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입장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대연합으로 의석을 확보하는데 힘을 쏟고 그 의석들을 바탕으로 진보대연합을 만들자는 취지 같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진보대연합을 먼저 성사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민주대연합을 하자는 진보대연합 주장이 많았습니다. 민주당이 패권을 부려 진보정당들과의 연합에 소극적이니 진보진영이 단결해서 연합을 강제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먼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대연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진보정당들의 선거 도전이 고전할 수 있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레프트21〉은 그동안 진보정당들을 비롯한 여러 진보세력들이 진지하게 진보대연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 전에 진보정치대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이 때문에 진보대연합은 정치적 당위로만 돼 있고 실천에서는 민주대연합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에 근거해 진보세력이 일부 지역에서 지자체장이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라도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민주당과의 연합은 불가피하게 진보정당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비정규직,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문제나, 아프가니스탄 등 제국주의 전쟁에 파병하는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정당들이 기존의 진보적 입장들을 주장하려 할 경우 그 화살이 한나라당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재보선 과정에서도 ― 선거연합을 한 것도 아닌데 ―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에게 연합을 하려면 비판을 삼가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하물며 전국적으로 연합이 이뤄질 경우 이런 압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진보정당들이 이를 거부할 경우 선거연합 자체를 깨려 한다는 비난과 압력에 시달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이 끝까지 자기 입장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거연합 자체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선거 과정에 돌입하고 나면 당선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서 진보정당들의 강령을 민주당의 그것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커질 수 있습니다. 애초에 선거연합의 목적이 더 많은 의석 확보이지 진보정당들의 정체성을 드러내 그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아니게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단계’로 설정된 ‘진보’대연합은 대중을 기만하는 목표가 돼 버릴 수 있습니다. ‘진보정당도 의석 확보를 위해서라면 진보적 요구들을 유보할 수도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의 존재 가치는 크게 퇴색할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식으로든 단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정치대통합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선거연합을 통해서라도 진보적 유권자들을 결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에는 많은 당선자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결집된 대중적 기반을 확대해 가며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건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명박 정부와 그들이 지향하는 시장지상주의적 가치들을 반대하는 진보적 대중을 결집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