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 독자들이 신문의 구실을 말한다
〈노동자 연대〉 구독
〈레프트21〉 독자들 중에 조력 지인들에게 꾸준히 신문을 판매하고 기고도 하는 독자들이 있다. 〈레프트21〉은 이들 중 몇 명과 신문사에서 만나 그들의 활동에서 신문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들어 봤다. 이들의 경험이 더 많은 독자들의 경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진보적인 활동가들조차 〈레프트21〉과 같은 사회주의 신문을 판매하는 행위를 폄훼하거나 구차하게 여긴다. 우리 신문의 독자들도 신문을 판매하려다가 이런 눈칫밥을 먹고 위축된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레프트21〉이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는 목적과 관계있다. 만약 우리가 소수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문을 발행하고 판매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이나 게릴라 투쟁을 중시한 체 게바라가 신문을 발행하고 판매망을 조직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혁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신문을 발행했다. 마르크스의 〈신라인 신문〉, 레닌의 〈이스크라〉와 〈프라우다〉, 그람시의 〈신질서〉, 트로츠키의 〈우리의 말〉, 로자 룩셈부르크의 〈적기〉가 그런 사례다. 만약 이런 혁명가들에게 신문이 없었다면 그들과 그 단체의 견해를 정확하게, 널리 노동자 대중에게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신문이 “집단적 선전가이자 집단적 선동가다. 또한 집단적 조직자다” 하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신문을 통해 일상적으로 지배계급 사상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의식에 변혁적 세계관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해 왔다. 또,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과 변혁적 세계관 사이의 가교를 놓으려 했다. 〈레프트21〉은 이런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문이 조직자 구실을 하려면 그 지지자들이 판매해야 한다. 신문은 절대 스스로 발이 돼서 조직할 수 없다. 소수가 고립돼서 신문을 만든다면 그 신문은 한 달도 못 가서 발행이 중단될 것이다. 독자들이 신문을 판매해야 하고, 기고자와 정보원이 돼야 하며, 신문을 후원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언론과는 구별되는 사회주의 신문만의 특징이다.
사회주의 신문에는 돈 많은 한두 명의 기부보다 신문을 지지하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정기적인 후원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변혁적 논조를 누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을 판매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신문을 판매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를 ‘커밍아웃’하는 것이다. 신문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사상의 충돌이 벌어지고, 그런 충돌은 사상을 발전시킨다. 또, 지금 당장은 한두 쟁점만 동의할 수 있지만, 꾸준히 판매하다 보면 더 많은 쟁점과 더 총체적인 세계관을 토론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신문 지지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만약 신문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짜로 나눠 준다면 이런 일들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신문을 판매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우리 신문에 관심을 보이는지, 무엇에 이견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레프트21〉은 다섯 명의 독자들과 함께 그들의 활동 공간에서 신문이 한 구실에 대해 대담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활동가들 속에서 신뢰를 쌓아야”
김승섭 동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이날도 흙묻은 바지를 털며 신문사에 들어섰다.
김승섭 동지는 노조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다른 정치 경향 활동가들이 제지해 처음에는 신문을 판매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쌓으면서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정치적인 관심이 높은 활동가들,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신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런 활동가들은 자신이 뭔가를 답해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신문이 제기하는 논점을 회피하기 어렵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신뢰를 보내는 활동가들에게 꾸준히 신문을 판매한다. 6개월 동안 주말마다 꼬박꼬박 평택 미군기지 집회에 참가했을 정도로 정치 문제에 관심이 높은 활동가들이나 ‘조직가’(혼자 건설현장에 들어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조로 “인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10년 동안 해 온 유능하고 경험 많은 한 활동가에게 정기구독 신청을 받았다. 이렇게 꾸준히 신문 구독을 권유한 결과, 이제 사람들은 중요한 사건만 터지면 〈레프트21〉은 어떻게 보는지 묻는다고 한다.
김승섭 동지는 “나는 돈을 더 받고 판매한다. 신문 판매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나는 정색을 하고 ‘구걸이 아니라, 당신을 [중요한 토론 상대로] 생각해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답변한다”고 했다.
“생활과 정치는 연결돼야”
김상진 동지는 호텔 노동자다. 그도 작업장 동료들에게 꾸준히 신문을 판매한다. 그는 촛불시위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을 뜬 자칭 ‘촛불세대’다.
김상진 동지는 “신문 중심의 생활”을 강조했다. 그는 “생활과 정치는 연결된 거니까 의식적으로 찾아서 연결해야 한다”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TV 토론회·뉴스 내용을 소재로 대화가 되면 다음날 관련 기사를 소개하며 신문을 권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다가 정기구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김상진 동지는 자신의 작업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호텔 노조위원장에게 노조 교섭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신문을 판매했다. “그 호텔 노조위원장은 그냥 말을 잘 하면 교섭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세력관계가 중요한지를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우리 신문에 노동조합 소식도 있고, 당신 노조에 딱 맞는 사례가 없을지는 몰라도 신문을 계속 읽다 보면 팁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아야”
인천에서 온 대학생 독자 오선희 동지도 정치적 대화를 나누는 조력 지인들에게 신문을 꾸준히 판매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신문 볼 겨를이 없었지만 대학에 가면 꼭 신문을 보고 싶었다”면서 “대학 신입생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인터넷에서 처음 〈레프트21〉을 접했고 정기구독을 하며 세상을 진보적으로 보는 눈을 떴고, 친구들에게도 신문을 권유한다고 한다. 친구들은 〈레프트21〉이 “솔직한 신문”이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오선희 동지는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은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문 기사를 보면 팔 사람이 생각난다. 여성 기사를 보면 여성주의 동아리에 있는 친구가 생각나고, 경제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기사를 보여 줬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상대평가에 반대하는 글을 쓴 친구에게는 신문에 실린 《경쟁에 반대한다》 서평을 소개해 줬다. 인권캠프에 갔다가 만난 한 학생이 집회에서 우리 신문을 샀는데 비 때문에 쭈글쭈글해진 신문을 다시 말려서 읽었다는 얘기를 하길래, 신문을 판매했다.”
그녀는 동아리 선배와 민주대연합 관련 토론을 하면서 신문을 판매했고, 이 선배와 토론하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을 독자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독자를 예단해선 안 돼”
서울 서부지역에서 〈레프트21〉 거리 판매를 꾸준히 해 온 최윤진 동지는 가판에서 받은 연락처로 연락해 정치적 관계를 맺은 경험을 소개했다. “거리 판매대에서 신문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신속히 연락해서 그들의 관심을 찾아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함께 신문을 판매하는 독자들 중에는 직장에서 신문을 판매하며 정치적 ‘커밍아웃’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친구들 앞에서 신문을 펴 놓고 있으면 한 부 달라는 경우도 있다.”
그녀는 신문을 판매할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조언해 줬다. “신문 독자를 지나치게 예단하지 않는 게 좋다. 주위에 팔 사람이 없다던 한 독자에게 ‘언젠가 팔 일이 생길 것’이라며 신문을 갖고 다니라고 권유했더니 결국 최근에 신문을 판매했다.”
“신문은 정치적 인간인 나를 잘 표현하는 수단”
〈레프트21〉 웹마스터인 안형우 동지는 대학에 다닐 때 “걸어다니는 신문”으로 불렸다. 그는 교회 친구, 학생회 집행부,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 등에게 신문을 판매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론을 했다.
안형우 동지는 가끔 “너는 신문 팔려고 사람 만나냐”고 구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신문이 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적 인간인데,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신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안형우 동지는 신문 판매를 압박으로만 여기지 말고 신문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꼽아 보면 판매해야 할 이유를 찾게 될 거라고 조언했다.
“기고는 신문에 애정을 갖게 만든다”
기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승섭 동지는 “내가 쓴 기사가 나온 신문은 자랑스럽게 판다. 자기 글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신문에 애정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김상진 동지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으로서 노조관계법 개악에 합의한 한국노총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신문에 기고했다. “내가 쓴 기사를 한국노총 게시판에 올렸는데, 나중에 한국노총 항의 방문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들 내 기사를 보고 말을 걸어 왔다. 그때 기고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윤진 동지는 직장인 독자들과 인터넷 메신저로 잠깐씩 대화하다가 신문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그것을 짧게 정리해 독자편지로 보낸다. 김승섭 동지도 “글 쓰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화 통화나 인터뷰한 것을 풀어서 기사화하는 방법도 많이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상진 동지는 자신이 신문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어려움을 떠올리며 “되도록이면 용어를 쉽게 쓰고, 불가피하게 [어려운 용어를] 써야 한다면 설명을 달아 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들의 경험처럼, 〈레프트21〉에 동의한다면 “와! 〈레프트21〉 주장이 참 괜찮네” 하고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노동조합과 대학 등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문을 판매해 보자.
인터뷰 녹취: 김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