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민주화 운동:
독재 정부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

지난해 7월 수많은 이란인이 독재와 억압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다. 도미닉 쿠로스는 지금 서방 열강이 이란에 추가 경제 제재를 하려는 시점에서도 진정한 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끌 잠재력은 여전히 이란 민주화 운동에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이란 민중이 독재에 반대해 거리에 나섰을 때 이란 정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 뒤로 여섯 달이 지났지만,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세계 열강의 정상들은 이런 분노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란 민중은 자국 지배자에 반대할 뿐 아니라 외국의 경제 제재와 군사 개입 위협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란 대선 결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역동적 대중 운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대중 행동의 물결은 12월 7일 학생의 날 ― 1953년 쿠데타에 반대하다 살해된 학생 세 명을 기리는 날 ― 에 시작됐다. 이란 전역에서 학생들은 기념식 행사를 대중 시위를 벌일 기회로 활용했고, 보안군과 친정부 민병대 조직인 바시지와 충돌했다. 그 뒤부터 거의 매일 대학들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2009년 12월 21일 반정부 인사 아야톨라 몬타제리 장례식

12월 19일 저명한 반정부 인사인 아야툴라 후세인 알리 몬타제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그는 1979년 혁명의 지도자였고 한때 초대 최고 지도자인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란 혁명 이후, 몬타제리는 갈수록 이란의 인권 상황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다. 쿰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다.

일주일 뒤는 아슈라[시아파 이슬람 최대 기념일]였다. 아슈라는 이맘 후세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시아파는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독재에 맞선 소수의 반란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긴다. 이날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그들은 이런 정신을 계승한다고 생각했다.

분열

이란 정부와 보수파 성직자들은 종교 행사를 ‘악용’하는 자들을 ‘분쇄’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수십만 명이 이란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보안군과 바시지 민병대는 시위 참가자들을 공격했다. 수백 명이 체포되고 야당 지도자 후세인 무사비의 조카를 포함해 아홉 명이 살해됐다.

이 사건은 이란 민주화 운동이 지속적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국가 탄압에 맞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의 요구가 선거 부정 항의를 넘어선 것이다. 운동은 민주화 쟁취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통일된 요구뿐 아니라 심지어 정경 분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연히 이 운동 안에는 다양한 정치 경향들이 공존한다. 이란 민주화 운동은 처음부터 포괄적인 성격을 지녔다. 대선은 모든 개혁파들이 단결하는 계기였지만, 그들은 이제 그보다 더 나가려 한다.

올 1월 민주화 운동의 다원적 성격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것은 저명한 다섯 개 이란 망명자 단체에서 발표한 것이다. 선언문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대통령직 사임과 성직자 투표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거기에다 선언문은 노동조합뿐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모든 정치·학생·NGO·여성 조직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고, 모든 대중매체 수단을 이용할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 그리고 사법부 수장을 선출할 권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언문 작성자들은 더 많은 요구가 있고, 선언문은 민주화 운동에 방향을 부여하려는 초기 시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런 요구들 중 하나라도 성취한다면 대단한 진보일 것이다.

민주화 운동은 탄생 초기부터 이란 지도자들을 분열시켰다. 민주화 운동의 지도적 인사 중 상당수가 지배계급 출신 ― 무사비가 대표적 ― 임을 감안하면 이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권 내부의 분열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최근 시위가 발생하기 전부터 주류 정치권의 상당수 인사들은 아마디네자드가 서방을 대할 때 ‘튀는’ 것을 우려했고, 그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서방에 도전하는 것을 비타협적 원칙으로 삼기보다는 유용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2005년 처음 당선했을 때 그는 ‘대악마’에 맞설 뿐 아니라 부를 재분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평등이 줄기는커녕 심화하자 그는 지지자 결집을 위해 갈수록 ‘서방 때리기’에 의존했다.

정권의 분열은 위협적 운동에 직면하자 더 커졌다. 일부 지배자들은 운동을 진압하려면 타협으로 대중을 다독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공식 노선은 시위대를 분쇄하는 것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국가 사이의 갈등도 커지는 것 같다. 혁명수비대는 자기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 정부가 시위대를 통제하는 데 자신의 힘이 필요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원래 혁명수비대는 ‘혁명을 방어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1990년대 민영화를 급격히 추진할 때 일부 산업을 인수하는 등 최근에는 상당한 힘을 가진 독자적 세력으로 성장했다.

2009년 선거를 앞두고 정부 내 보수파들은 단결할 수 없었다. 일부 영향력 있는 보수파들은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독자 후보를 내세웠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차이를 내보이려 하지는 않았지만 물밑에서는 권력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런 모순 덕분에 민주화 운동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정부에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서방 지배자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거짓 이분법

버락 오바마가 이란과 대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조지 부시 때와 비교해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결론은 동일하다. 이란을 고립시키고 압력을 넣어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공격의 고리는 이란의 핵개발 계획이다. 이란은 이미 유엔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이란이 서방의 제안에 답해야 하는] 가장 최근의 기한은 12월 31일이었고, 여섯 열강이 모여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의 고위 관료들이 모였고, 중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하급 외교관을 보내 더 강력한 제재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직 공식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추가 제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서방 열강의 처지에서 보면, 핵무장한 이란은 중동의 세력 균형을 크게 바꿀 것이다. 그들의 불구대천의 적이 중동의 열강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오바마는 자신의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인 이란 문제 해결이 완전히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란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서방과 대결하는 것은 분열한 이란을 단결시킬 좋은 소재다.

추가 제재를 어렵게 하는 유일한 걸림돌은 중국이다. 유엔안보리 비토권을 가진 중국은 이란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며, 이란과의 무역이 제재로 흔들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가 제재 찬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고립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 제재는 이란 민중에게 큰 해를 끼칠 것이다. 제재는 제재를 받은 이라크에서 그랬듯이 이란 정부가 운동을 탄압할 명분을 줌으로써 운동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란 민중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진정한 문제는 자국 정부를 지지하면 반서방이고 자국 정부를 반대하면 친서방이라는 다른 중동 나라들의 거짓 이분법이 이란에서도 판을 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란 민중은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31년 전 서방의 후원을 받은 독재자를 내쫓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민주주의를 바란다.

2월 11일은 1979년 이란 혁명 기념일이다. 많은 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비록 2010년과 1979년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지만 이란 민중의 단호한 의지는 동일하다. 이란 정부가 유화책을 취하든 탄압을 밀어붙이든 이 운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0년 2월 호 | 번역 김용욱 기자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