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정연의 〈레프트21〉 기사 비판에 대한 반박:
지금이 학생회의 ‘한계’를 선언할 때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이하 학사정연)는 〈신질서〉 24호 기사 ‘〈레프트21〉 2010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 분석을 비판한다’에서 본지 21호에 실린 내 글(‘‘운동권’ 후보들의 대거 당선, ‘비권’의 좌향좌’)을 반박했다.
학사정연은 2010년 총학생회 선거 결과가 “‘비권’세력의 ‘의미 있는 좌익화’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학생운동진영이 뚜렷한 강세를 보인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학생회 간부가 좌파인가 우파인가에 상관없이 학생회의 본질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새로운 중심진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학사정연은 “사회주의 정당 건설 투쟁”을 새로운 진지로 여긴다.
구태의연한 분석
학사정연은 내가 올해 학생회 선거의 핵심 특징으로 꼽은 ‘운동권’ 후보들의 강세를 부정하지만, 그 근거는 한대련이 ‘U-card’(학생들이 대학 주변 상점에서 할인혜택을 받는 카드)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것밖에 없다.
우선, 이것은 아주 부분적인 문제를 들어 한대련의 전체 활동을 비난하는 전형적인 종파주의적 태도다. 한대련은 지난해 교수 시국선언 지지 운동, 등록금 인하 운동, 학내 민주주의 방어 운동 등을 주도했다. 쌍용차 점거농성 지원 투쟁에서도 가장 큰 학생대열은 바로 한대련이었다.
무엇보다, 서울과 지방 주요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당선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한대련이 올해 선거에서 대거 당선할 수 있었던 비결은 ‘U-card’가 아니었다. 〈고대신문〉이 주관한 여론조사 결과, 지난해 고려대 학생들이 총학생회가 가장 잘한 일로 꼽은 것은 ‘U-card’사업이 아니라 사회운동 참여였다. 올해 ‘비권’에서 ‘운동권’으로 세력교체가 이뤄진 대학들에서도 ‘운동권’ 후보들은 모두 진보적 목소리를 비교적 분명하게 내면서 당선했다.
학사정연의 묘사처럼 ‘운동권’이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복지공약만 부각해야 하는 수세적 처지에 몰렸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권’이 투쟁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좌향좌한 것이 이번 학생회 선거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던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로 ‘운동권’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운동권’에 개방적인 학생회들도 많이 탄생했다. 이제 좌우파를 막론하고 등록금 투쟁은 하겠다고 내거는 것이 ‘대세’가 됐다. 그런데도 학사정연은 ‘비권’을 그저 ‘급진성을 훼손하는 존재’로만 여긴다.
학사정연은 1997년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한 취업난, 부르주아 민주주의 달성 이후 공동의 목표 상실, 학생운동 지도부의 적절하지 못한 대응” 때문에 학생들이 학생회에 복지만 기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2008년 이후로 다소 달라지기 시작한 학생회 선거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분석이다. 나는 촛불항쟁 당시 거리 분위기를 취재하며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총학생회는 왜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생회가 사회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말 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 후보들이 대거 당선했다.
학사정연은 1997년 이후 경제 위기가 학생들의 의식을 더 후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 위기 때문에 한층 심해진 취업난은 학생들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동시에 불만도 키웠다. 2005년 이건희 학위 수여 반대 시위와 지금 중앙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하는 정서가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독재 정부가 지배하던 198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학생들은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여대생이 군홧발에 머리를 짓밟히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3권 분립’조차 부정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대학생들은 불의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학사정연도 “학생회가 ‘좀더 왼쪽으로’ 이동”했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 벌어진 각종 반민주적 공격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고 거리로 뛰어 나”갔고, 이런 분위기가 “비권 학생회들까지도 학생들의 요구에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했다”고 인정했던 것 아닌가.
이런 변화에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학사정연처럼 ‘비권’의 좌익화는 “현상”일 뿐이라며 학생회를 간단히 제쳐 두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금처럼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공격과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해 많은 학생들이 급진화하고, 그 결과 ‘운동권’이 학생회에 대거 진출하고, ‘비권’조차 진보적인 요구를 수렴하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학생회에 동참해야 마땅하다.
회피
학사정연은 학생회 대신 ‘사회주의 정당 건설’이 중요하다고 본다.
당연히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 정당’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중요한 조직이다. 학생회에서 활동하든, 그렇지 않든 사회주의자들은 당 활동을 통해 단련받고 전체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지금 같은 시기에 학생회에서 다른 학생들과 섞여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회피하는 핑계거리가 돼선 안 된다. 사회주의 당의 활동가들은 대중 속에서 그 재원을 충원받고, 대중 속에서 성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사정연은 레닌의 주장을 새겨들어야 한다. 레닌은 《공산주의 좌익 소아병》에서 “만일 당신이 ‘대중’에게 도움을 주고 ‘대중’의 동조와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지도자들’(그들은 기회주의자들과 사회 배외주의자들이므로 대부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르주아지와 경찰에 연결돼 있다)로부터 오는 어려움들, 곧 고통, 속임수, 모욕, 박해 등을 두려워해선 안 되며,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아무리 반동적일지라도 프롤레타리아나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있는 기구들과 협회 및 결사체들에서 체계적으로, 참을성 있고, 끈덕지고 끈기 있게 선전과 선동을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고 강조했다(강조는 레닌 자신의 것).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학생회에 혁명적 의식에 미치지 못하는 대중만 있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의식 변화를 주목하고, 비록 모순적이고 불균등하지만 급진화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학생회 활동에 동참하면서 그 한 가운데서 토론하고 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대중과 유리된 사회주의 조직은 추상적 선전주의 종파일 뿐이다.
학사정연은 레닌이 두마(러시아 의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인용하며 “학생회를 폐기할 필요는 없다”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주장조차 학사정연이 레닌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차르(러시아 황제)가 만든 지배계급의 도구인 두마와 학생들의 자주적 조직인 학생회를 동렬에 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운동권’과 진보적 ‘비권’이 운영하는 학생회가 대세인 상황에서 학생회를 두마와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황당하다.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지금처럼 학생회가 대체로 진보적 학생들의 수렴점이 될 때, 그 안에서 운동을 건설하고 지지자를 획득하려고 노력하면서, 운동이 전진하려면 왜 사회주의 정치가 필요한지 입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