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청소 노동자의 ‘따뜻한 밥 한 끼’를 되찾으려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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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화장실에서 찬밥을 삼켜야 하는 이들이 있다. 대학, 병원 등에서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화려한 건물을 매일 청결히 단장하지만, 마땅히 다리 펴고 밥 먹을 공간도 없고 밥을 데울 기구도 쓸 수 없다. 말 그대로 ‘찬밥’ 신세다.
그래서 공공서비스노조 등이 모여 청소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한다. 3월 3일,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홍보전이 신촌 기차역 앞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3·8 세계 여성의 날 주간 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청소 노동자들이 대체로 ‘고령 여성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행사장 근처에 전시된 사진들은 계단 밑이나 창고, 화장실 등 청소 노동자들의 비좁고 남루한 쉼터를 고스란히 보여 줬다.
캠페인단이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이 찬밥을 먹는 이유는 □□ 때문이다’ 하고 적힌 카드를 내밀자 많은 시민들이 기발한 ‘정답’들을 내놨다. 권리의 박탈, 차별, 악덕 업주, 이명박, 막장 정치, 나랏돈 가로채는 놈들, 낮은 복지 수준, 비싼 밥값 ….
캠페인단은 사람들이 볼일을 보고 구토를 하고 화장을 고치는 화장실 한 구석에서 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밥을 먹는 상황을 퍼포먼스로 재연하기도 했다.
청소 노동자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현실을 고발하는 ‘증언대회’도 열렸다. 학생과 노동자 70여 명이 함께 자리해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전 출범한 공공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이화여대분회의 신복기 분회장은 이화여대 청소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다.
“새벽에 출근하며 도시락을 두 개 싸오는데, 전기 사용이 위험하다고 전자렌지도 못 쓰게 합니다. 밥이 차가워져서 찬밥을 물에 말아먹습니다. 한 달에 80만 원을 받는데 돈이 들어서 밖에서 식사를 하는 건 ‘그림의 떡’입니다.”
휴게실로 쓰는 곳은 “판자집이나 다름없어서 겨울엔 무릎이 시려서 못 앉아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했다.
고려대분회 김윤희 병원 대표도 “휴식 공간이 너무 좁아서 24명이 굴비 엮듯이 앉아서 쉰다”고 하소연했다. 눈칫밥, 찬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본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대학 건물은 날이 갈수록 삐까뻔쩍해지고 대학 등금은 오르는데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찬밥 신세”라고 꼬집었다.
연세대 학생행진 지은 활동가도 “돈 많은 학교와 정부가 약한 학생과 노동자를 쥐어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학생들도 노동자 투쟁에 꼭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공노조 류남미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청소미화 노동자들의 ‘찬밥’은 “단지 밥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 실장은 영화 〈빵과 장미〉에서 한 청소 노동자가 말한 “작업복의 비밀”을 인용했다. “작업복을 입으면 사람들이 우리[청소 노동자]를 유령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학 당국이나 병원 등 대형 건물주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창고, 화장실, 계단 아래 한 구석으로 노동자들을 밀어 넣고 냉대한다. 그 노동자들이 없다면 건물이 며칠 만에 쓰레기장이 될 텐데도 말이다.
류남미 실장의 말처럼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은 법률도 보장하는 권리다. 신복기 이화여대분회장도 “우리 요구가 사치스러운 게 아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근처 이화여대로 이동해 집회를 했다. 학교 측 관계자들과 사복 경찰들이 나서 방해를 했지만 참가자들은 활기차게 발언하고 구호를 외쳤다. 근처를 지나는 많은 학생들도 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최저임금 보장하고 휴게공간 마련하라”,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노동권을 쟁취하자.”
이 외침은 정말로 정당하다.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청소 노동자들의 걸음에,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운동에 지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