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부인과 주변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에 수십 명의 여성들이 피임약을 구입하러 온다. 그중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아서 오는 여성들은 내가 여성임에도 쭈뼛쭈뼛 처방전을 내민다. 나 역시 약을 숨겨 주면서 속삭이듯이 복약상담을 한다. 그럼 그 여성은 약 한 알을 꿀꺽 삼켜 버리곤 죄인인 양 약국을 황급히 나간다.
낙태 시술 후 처방을 받아온 여성들은 얼굴을 가린 채 들어와선 꼭 필요한 복약상담도 듣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응급피임약은 성관계 이후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처 병원에 가지 못한 여성들은 약국에 와서 울먹거리며 약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약이 전문의약품(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 가능한 약품)이기에 안타까워도 그들을 돌려보내야만 한다. 약을 구하지 못한 그 여성은 어떻게 될까.
이리저리 약국을 전전긍긍할지도 모른다. 72시간이 지나면 응급피임약도 소용이 없기에 낙태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병원에서 낙태조차 할 수 없다. 낙태 가능한 병원을 찾게 되더라도 낙태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 수술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 그 여성은 낙태를 하기 위해 불법시술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낙태는 범죄가 아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했을 때 사회는 그들을 범죄시하지 말고 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응급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