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엉망으로 만들어 줘서 좀 뿔이 났다. 알고 보니 점원들이 동계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속재료를 잘못 넣은 것이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다 같이 모여 김연아 경기를 봤다.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운 요즘 같은 때 사람들은 경이적인 경기 장면을 보면서, 김연아가 넘어져 주저앉아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고달프고 팍팍한 날들에도 역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올림픽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런 잠깐의 환희가 텁텁하게 느껴질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 당일 5천여 명이 밴쿠버 도심에서 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와 행진을 했을 때 언론들은 그중 1백여 명밖에 안 되는 아나키스트들의 기물 파손 장면을 더 부각시켰다.
하지만 밴쿠버 시위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보면 밴쿠버에서는 2003년부터 저소득층 8백50가구가 집을 잃고 2천5백 명이 노숙으로 내몰렸다고 한다. 선수 숙소와 관광객 쉼터를 짓는 사이에 집값이 갑자기 올랐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도시 미관을 이유로 노숙자 쉼터조차 폐쇄하거나 이전해 버렸다. 시위대는 2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쓴 대가가 이런 것이냐며 분노했던 것이다.
밴쿠버를 보면서 서울디자인올림픽을 한다며 노점상을 내쫓고 이주노동자 단속을 벌이는 우리 나라가 생각났다. 나도 뉴타운개발로 집값이 올라 지난주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삼성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빙상에 투자해 이제야 빛을 보고 있다며 자화자찬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에어컨 광고에 김연아를 출연시킬 계획을 세우며 기대에 부풀었다고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신기록 달성을 위해 만들어진 위험한 트랙 때문에 그루지야 출신 루지 선수 쿠마리타슈빌리가 죽었을 때, IOC는 이 문제가 선수 개인의 실수인 것처럼 몰아가며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나 국제봅슬레이협회 회장은 “[이번 트랙 디자인 결정은]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업적인 선택이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는 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민족주의보다는 예술에 가깝지 않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꼭 닮아 있다.
여성의 날씬한 몸을 추켜세우는 사회 분위기도 왜 장미란이 아니라 김연아인가 하는 질문이 맴돌게 한다. 김연아 신드롬을 보며 드는 불편한 마음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