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
의료 민영화의 진실 —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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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에서 5년간 내국인 진료를 1백 퍼센트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과 진보진영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제주 영리병원 도입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또 민간 의료보험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회사에 넘겨주려고 한다. 미국식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또는 폐지, 민간 의료보험 확대, 영리병원 설립 허용을 핵심으로 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를 민영화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서비스의 비용이 줄고 효율성은 높아질 거라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은 의료 민영화의 진실을 밝히고 정부의 논리를 반박한다. 이 책은 보건의료 정책을 연구해 온 진보적 의사 일곱 명이 지었다. 저자들은 2008년 촛불항쟁을 경험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에게 좀더 쉽게 의료 민영화의 실체를 폭로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쉽게 썼다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은 한국보다 먼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한 다른 나라들(미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태국 등)의 사례를 풍부하게 들어 의료 민영화의 진실과 미래를 잘 보여 준다.
한국 정부가 모델로 삼는 미국 보건의료의 실상을 보여 준 영화 〈식코〉는 많은 사람들이 의료 민영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이 책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미국인 중 4천7백만 명은 의료보험이 없고, 1천8백만 명은 보험이 있으면서도 병원비를 제대로 못 낸다(2006년 현재).
사실 미국은 보건 의료와 관련한 공공 지출이 노르웨이, 스위스, 룩셈부르크 다음으로 많은 나라다. 영국으로 따지면 무상 의료를 하고도 남는 공적 부담이다. 세금을 통해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하지만, 가계의 의료 지출은 재앙적인 수준이다. 가계 파산의 절반이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세금이든 개인 부담이든 이렇게 많은 돈을 보건의료에 쓰는데도 국민들의 건강 수준은 세계 30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청난 돈이 민간 보험회사, 제약회사, 영리법인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 〈식코〉가 미국과 대비하는 ‘무상의료의 나라’ 캐나다에서도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 축소로 주 정부들은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고, 민간 의료보험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민간 의료보험 시장의 확대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영국은 국가보건서비스를 도입한 초기에는 지불 능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동등한 의료 이용이 보장됐다. 지역적 불균형이 개선돼 국민의 건강 수준은 미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대처 정부가 국가보건서비스의 조직을 축소하고 보장 범위를 줄이고 지역 간 형평성을 무너뜨렸다. 결국 국가보건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민간 부문이 점령하게 됐다.
한국의 보건의료는 공공성이 낮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공공 병원 비중이 60~90퍼센트인데 비해, 한국은 8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공공보건 지출도 OECD 평균인 약 73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55퍼센트 정도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 비율이 줄었다. 보장성도 주요 선진국이 85~90퍼센트인데 비해,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60퍼센트 수준이다. 2000년대 이후 늘어나던 보장성도 이명박 정부 들어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민영화는 한국의 노동자·서민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저자들은 의료를 시장에 맡기면 실패하므로 사유화가 아니라 공공성이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사보험을 최소화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공적 의료보장 체계를 재구성하고, 보장이 되지 않는 비급여를 최소화하자고 한다. 진료비 지불 방식을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 수가제나 총액예산제도로 바꾸고, 왜곡된 의료 전달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병원은 입원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하자고 한다. 병원의 개인 소유를 없애고 비영리 법인의 공공성을 강화하자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는 제시하지 못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으로, 가입자들이 평균 월 1만 원 정도 보험료를 더 내서 보장성을 높이자고 한다. 그러나 2008년에 전년도보다 보험료를 3조 2천억 원이나 더 걷었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2.4퍼센트 떨어졌다. 더구나 공공지출, 복지 비용을 삭감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우리도 양보할 테니, 정부도 양보하라’는 방식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의료 민영화로 구조조정과 노동조건 후퇴, 노동강도 강화에 직면할 병원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투쟁을 벌이는 것, 4대강 사업, 파병 등에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복지를 늘리라고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