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투쟁이 경제 위기를 낳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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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투쟁이 경제 위기를 낳는가?
이정구
주요 산업에서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사장과 그 언론들은 노동자 투쟁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린다고 비난한다.
다음의 두 사례가 이 말이 거짓임을 입증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거대한 파업 물결이 일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시기에 노동조건의 개선은 물론이고 대폭적인 임금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1980년대 말까지 고도 성장을 구가했다.
다른 한 사례는 1980년대의 미국과 영국이다. 1981년에 항공관제사 파업이 벌어졌을 때 당시 레이건 정부는 광분해 항공관제사 노동자 1만 4천여 명을 해고했다. 항공관제사 투쟁 이후에 미국 노동 운동은 침체를 겪었지만 경제는 더 큰 침체에 빠져들었다.
1984∼1985년 영국에서 거대한 광부 파업이 있었다. 그 당시 신자유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던 대처 정부는 무력으로 광부 파업을 진압했지만 ‘영국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1980년대 내내 미국과 영국은 저성장을 거듭했다.
경제 위기가 노동자들의 투쟁과 고임금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서구 선진국의 경험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당시 서구 선진국 대부분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복지 지출이 늘어났음에도 장기 호황을 구가했다.
자본주의는 자본 간의 경쟁과 축적이 지배하는 사회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투자를 늘리지만 투자 대비 수익률은 오히려 줄어든다.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에 비해 그렇지 않은 불변자본 부문에 대한 투자 비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요 상품의 가격 구성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0퍼센트 미만이라는 사실은 기업의 성패가 주로 임금의 고하에 있지 않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사장들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비난하는 데에는 일말의 진실이 내포돼 있다. 경제가 불황으로 빠져들고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노동자들을 이전보다 더 쥐어짜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