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시위가 홍콩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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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시위가 홍콩을 뒤흔들다
데이빗 화이트하우스
7월 1일, 50만 명의 시위대가 홍콩 특구 행정장관 둥젠화를 물러서게 만들었다. 시민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새 법안 제출을 철회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 둥은 법안의 주요 부분만 보류한 채 다시 제출하려다가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지자 법안 제출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번 시위는 1989년 천안문 광장 운동 이후 홍콩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시위였다. 둥이 홍콩의 법률 체계를 본토의 억압적인 전통과 비슷하게 만들려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시위대는 둥의 사임을 요구했고 입법원 의원
시위가 벌어지자, 둥은 베이징에 있는 상전들과 상의한 끝에 법안 내용 중 가장 공격적인 부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영장 없이도
홍콩 주민들이 알고 있듯이, 그런 기밀의 일부는
사람들이 둥에 반감을 갖게 된 또 다른 원인은 경기 침체 때문이었다. 홍콩이 1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홍콩 사람들의 삶은 파탄났다. 실업률은 8퍼센트나 되는데, 자유 시장을 맹신하는 둥은 실업 보험 같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제안을 거부했다.
둥의 가장 큰 양보는 본토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집단을 모두 금지하려던 시도를 포기한 것이다. 이런 제한이 실행됐다면, 파룬궁이나 로마 가톨릭 교회 같은 종교 단체부터 노동조합이나 좌파 정당들까지 모두 불법화됐을 것이다. 둥과 정부 핵심 인사들은 7월 9일 입법원에서 수정된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홍콩은 1997년 영국 통치에서 벗어나 통치권이
그러나 법 제정 마감 시한은 없고, 7월 1일 시위 주최측은 법이 통과되기 전에 더 심도 깊은 토론을 요구하기 위해 7월 9일 입법원을 에워싸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 시위는 첫번째 시위보다 더 격렬한 충돌을 빚을 것이라고 예상함에 따라,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