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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 투사에서 기업주의 친구로

올 1월 브라질의 새 대통령 룰라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 참석자들에게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다보스로 날아가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기업주들을 만났고, 지난 6월에는 에비앙으로 날아가 G8 정상들을 만났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에비앙에 이르는 행보가 룰라의 정치적 궤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해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의 당선은 수백만 노동자와 농민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룰라 자신이 1970년대 말부터 위세를 보여 준 노동자 운동을 대변하고 있었다. 많은 노동자와 농민은 룰라의 당선으로 이제 생활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국민의 27퍼센트(4천6백만 명)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극심한 빈부격차, 인구의 1퍼센트가 전체 토지의 45퍼센트를 소유하는 불평등 구조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 이후 그가 한 첫번째 행동은 기업주와 국제 금융계 인물을 각료에 임명한 것이었다.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된 엔리케 데 캄포스 메이렐레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 브라질을 위기에 빠뜨린 카르도주와 마찬가지로 브라질사회민주당 출신이다. 그는 “IMF와 약속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고금리와 초긴축 정책, 노동조합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게다가 룰라는 IMF의 요구보다 더 가혹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책 덕분에 룰라는 조지 W 부시와 미 재무장관 존 스노한테서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기업주들의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는 룰라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지도자”라고 추켜세웠고, 〈뉴욕 타임스〉도 “남미발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브라질이 개발도상국의 경기 회복을 이끄는 든든한 견인차로 변신했다”며 룰라의 정책을 환호했다.

갈등

룰라의 친기업주 정책은 먼저 노동자당 내에서 갈등을 초래했다. 노동자당 국회의원 세 명이 룰라의 정책에 반대하자 룰라는 이들을 당에서 축출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들이 룰라를 지지한 사람들과 평당원들의 커져가는 불만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노동자당 내의 갈등을 이렇게 요약했다.

“노동자당이 지난 1월 집권한 뒤 정치적 중도 노선으로 나아가는 행보를 재촉했기 때문에 정부 내에서 소수 강경파와 시장 친화적인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 룰라 정부는 노동자당이 이전에 비판한 정설[신자유주의―인용자] 경제 정책들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 핵심 지지자들인 공무원들의 연금 혜택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노동조합 집회에 참석한 뒤 축출 위협을 받은 루시아노 젠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 동료를 즐겁게 하기 위해 옛 동료와 헤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노동자당 의장 호세 제노이노가 이들을 제재할 의향을 내비쳤는데도 노동자당 내에서 이들 세 명의 국회의원들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룰라는 기업주들에게서 찬사를 받는 동안 자기 지지자들을 공격했다. 첫번째 표적은 세금과 연금 제도 “개혁”의 대상인 공무원 노동자들이었다. 48∼53세로 돼 있는 퇴직 연령을 높이고, 전체 연금 규모를 줄이며, 매달 내는 연금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 연금 개혁의 골자다.

룰라의 연금 개혁안에 반발해 교사와 대학 교직원, 세무직원, 의료 및 사회보험공단 직원 등 공무원 노조원들이 지난 7월 8일부터 연금 개혁안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 공무원 노조는 “8일부터 시작된 파업에 전체 노조원 90만 명 중 절반 가량이 참여하고 있다”며 “정부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업을 무기한 계속하겠다”고 경고했다. 세무 공무원에서 시작된 파업이 연방 경찰, 교육 공무원으로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룰라는 땅이 없는 농민들을 두번째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그는 토지 재분배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농민들한테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땅 없는 농민운동’(MST)은 룰라 정부에 기대를 걸어 토지 점거 운동을 잠시 중단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기업주들의 비위 맞추기에 바쁜 룰라는 농민들의 바람을 무시했다. 결국, MST는 토지 점거 운동을 재개해 지금까지 1백28곳의 토지를 점거했다. 지난 7월 2일 MST 회원들이 대통령궁 외곽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토지 재분배를 요구하자 룰라는 소농에게 54억 헤알(약 2조 4천억 원)을 융자해 주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IMF 프로그램에 따라 긴축 재정을 유지해야 하고 또 여유 재정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양보안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전망

세계 언론과 지배자들은 룰라의 “변신” 덕분에 브라질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그마한 사건에도 쉽게 타격을 받을 만큼 브라질 경제는 허약하다. 2퍼센트대의 저성장과 12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 그리고 2천1백60억 달러(약 2백55조 원)에 이르는 외채가 룰라 정부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험처럼, 브라질도 국제 금융자본가들에게서 찬사를 받다가 하루아침에 국가 파산 상태에 처할 수 있다. 그리 되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대안을 추구하는 룰라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고 결국은 자기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룰라 정부 들어 공무원 노동자와 땅 없는 농민들이 브라질과 더 넓게는 남미의 미래를 결정짓는 투쟁을 먼저 시작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이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