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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자본주의가 유럽을 양극화시키고 있다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IMF는 1천1백억 유로의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대신에 그리스는 추가로 공공서비스, 임금, 연금과 정부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총 긴축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1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내년 성장률은 -7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과거에 똑같은 구조조정을 강요당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사례를 보면 이 계획이 그대로 집행됐을 때 그리스의 노동자·민중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지 알 수 있다.

물론, 이 정도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악당들도 있다. 투기꾼들은 그리스 국채를 계속 공격해서 5월 4일에는 2년 만기 국채의 이자율이 무려 16퍼센트까지 치솟았다.

또,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그리스 긴축 수준이 과거 동아시아 사례와 비교해 충분히 높지 못하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주류 엘리트들은 불황기 긴축정책이 낳을 파장을 두려워한다. 예컨대, 〈뉴욕 타임스〉는 “긴축의 물결은 이제 막 회복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유럽 전체를 인위적으로 낮은 성장률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일부 유럽 경제학자들의 걱정을 전달했다.

〈뉴욕 타임스〉가 인용한 또 다른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스 피케티는 “지난해 은행들을 구제하려고 쓴 돈에 대면 그리스의 부채 규모는 새 발의 피밖에 안 됩니다”면서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아이러니이지만 주류 엘리트 중 긴축정책의 효과를 가장 날카롭게 경고한 것은 과거 유로존 출범 당시 ‘구제금융 금지’ 조항을 삽입하기 위해 소송을 벌인 독일 경제학자 세 명이다. 그들은 3월 말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긴축 프로그램은 경제 위기에 직면해 수요를 유지하려면 정부들이 경기 부양 정책을 펴야 한다는 케인스의 금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의 행동은 1930년대 공황 당시 정부 지출을 줄였던 독일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당시 독일의 사례는 불황 때 채권자를 기쁘게 하려고 재정을 삭감하는 것은 대량 실업을 낳고 사회를 급진화시킨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주장은 현재 그리스에서 연일 벌어지는 총파업과 대중 시위로 증명되고 있다(▶관련 기사 16면).

파시스트

그러나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가 부상했듯이 급진화는 오른쪽을 향할 수도 있다.

예컨대, 헝가리에서는 파시스트 정당이 4월 초 총선 1차 투표에서 무려 17퍼센트(3위)를 득표했다. 그들은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지지자 5만 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로마[흔히 ‘집시’로 불리는 소수민족]는 헝가리를 떠나라”, “유대인은 돼지” 같은 인종차별주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2000년대 초 헝가리 사회당의 시장주의 개혁이 낳은 불만을 이용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8년 전 세계 불황에 따라 헝가리가 IMF 구제금융을 대가로 혹독한 긴축정책을 펴면서 경제가 사실상 공황 상태로 빠지자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이것은 다른 유럽 국가에도 경종을 울리는 사례다. 유럽연합은 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륙 중 하나다.

동유럽은 IMF 구조조정으로 이미 공황 상태고 그리스를 포함한 이른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보다 경제 사정이 조금 나은 서유럽과 북유럽에서도 10퍼센트가 넘는 실업률과 크고 작은 긴축정책으로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제3의 길’ 사민당을 포함해 기성 정당들은 위기를 낳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너무 깊숙이 연관돼 있어 불신을 사고 있다. 덕분에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 등에서 파시스트 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성공하느냐에서 중요한 변수는 좌파적 대안의 존재 여부다.

헝가리에서는 2006년 급진좌파 연합이 탄생했지만 일관되게 사회당에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의 불만을 흡수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반대로, 그리스의 급진좌파 정당과 연합들은 대중의 분노가 엉뚱한 방향(이주자 등)이 아니라 투쟁으로 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옛 동독 지역의 긴축정책을 자양분 삼아 나치가 성장하려는 시도를 급진좌파 정당인 디링케(좌파당)가 주도해 두 차례나 가로막았다.

자본가들의 탐욕이 낳은 위기와 급진화를 기반으로 어떤 세력이 성장할 것인가에 따라 경제 위기의 극복 방식 — 고통 전가나 파시즘 같은 야만이냐 아니면 평범한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회냐 — 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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