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는 반쪽짜리 일자리, 반쪽짜리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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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유연근무제(일명 ‘퍼플잡’)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공무원부터 시범실시할 예정이다.
여성부는 이 제도 중에서 기존 정규직 노동자가 육아기에 단시간근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집중 부각하면서 ‘친 여성적 일자리’라고 홍보해 왔다.
실제로 이 제도를 반기는 여성 공무원도 있다. 육아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지원이 빈약하고, OECD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일을 중단하지 않으면서도 육아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고 여겨 여성들이 이 제도를 반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진정 여성들에게 ‘혜택’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노동부는 워크샵에서 ‘하루 4시간 근무에 월급 78만 원’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임금이 반토막 나면 여성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마음 놓고 단시간근로를 신청하기 어렵다.
여성이 원할 때 언제든지 원래 업무형태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장돼야 한다. 복귀가 불투명하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퍼플잡’ 토론회에서 한 공무원노조 활동가가 지적했듯이, 결국 유연근무제는 “저임금을 강제하면서 국가가 육아 지원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여성 교사들의 출산·육아휴직 기간을 근무일수에서 제외해 ‘엄마 교사’들의 성과급을 낮게 책정하는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유연근무제 도입의 핵심 목적은 기존 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육아기 근무 부담을 덜어주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단시간근로 형태의 채용을 전반적으로 늘리려는 데 있다.
노동부가 “성과 중심의 근무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듯이, 유연근무제는 전반적인 노동유연화의 맥락 속에 있다. 정부는 공·사기업에서 “단시간근로가 가능한 업무를 적극 발굴”해 이런 형태의 신규채용을 늘리려 한다.
이런 식으로 생긴 일자리는 모두 저임금의 저질 일자리일 것이고, 주로 저임금이라도 감수하려는 여성들이 이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체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더 떨어질 것이다.
결국 정부는 8시간 일하는 노동자 한 명에게 지출하던 비용을 4시간 일하는 두 사람에게 나눠 지출하는 식으로 총지출은 늘리지 않고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생색내는 것이다.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보육지원 대폭 확충, 질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주와 정부가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진정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