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그리스 여행에서 물씬 느낀 저항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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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며칠 전 일주일간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다.
4월 22일 그리스의 공공부문 파업이 예고된 것도 모른 채 우리 일행은 4월 21일 그리스에 도착했다. 낯선 사람들과 키가 작은 올리브 나무를 구경하며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향했다. 아테네 시내가 가까워 오자 도로 곳곳에 비슷한 포스터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어를 몰랐기에 포스터의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포스터들이 보란듯이 시내 구석구석 보기 좋은 곳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아마도 정부 행사를 알리는 것이리라 짐작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포스터가 너무나 눈에 자주 띄어 자세히 살펴보니 집회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테네 시내 곳곳에 붙은 그 포스터는 4월 22일 그리스 공공노조의 파업과 집회를 홍보하는 포스터였다.
다음 날 우리는 산토리니의 고대 유적지를 찾아갔다. 그곳은 한두 명이 관리하는 작은 유적지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별 기대도 하지 않고 혹시 어제 파업에 참가했느냐고 물었다. 사실, 이 작은 섬에서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대답은 “물론이죠”였다. 관광산업이 주요 산업인 그리스에서 이 작은 섬의 조그만 유적지마저 파업에 참가했다는 것에 나는 너무 놀랐다. 한국에 와서 뉴스를 찾아 보고 안 사실이지만 22일 공공노조의 파업은 의사와 간호사, 교사들까지 파업에 참가했다고 한다.
우리는 4월 24일 산토리니 여행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아테네 시내 곳곳이, 22일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 대신 5월1일 메이데이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로 가득했다.
여행 마지막 날인 27일에 그리스 운송노조의 파업이 있을 것이라고 호텔 직원이 알려 줬다. 호텔 직원은 우리에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지하철, 트램, 투어버스 모두 11시부터 5시 까지 파업을 하기 때문에 택시로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 줬다. 나는 한국의 경험을 떠올려 지하철과 버스의 운행 횟수가 줄어드는 정도일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파업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가 단 한 대도 다니지 않습니까?” 호텔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파업이라니까요. 한 대도 안 다닐 겁니다. 그래도 24시간 파업하지 않으니 당신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27일 11시가 되자 지하철 역사는 입구가 봉쇄돼 출입조차 할 수 없었고 버스는 정말로 단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아테네 시내를 두 발로 걸어 다녔다. 우연히 아테네의 한 대학에 갔는데 대학가 주변의 벽면은 5월1일 메이데이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로 가득했다. 또 거리 곳곳은 여기저기 메이데이를 알리는 각종 단체의 포스터로 가득했고 한 버스정류장에서는 반갑게도 그리스의 ‘맑시즘’ 행사(한국에서도 올해 10년째 대규모 진보포럼 ‘맑시즘’이 열린다)를 알리는 포스터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우연히 알게된 한국 교민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계속된 파업에 너무 화가 나서 그리스 친구에게 ‘왜 경제도 어려운데 자꾸 파업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짜증을 부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데 국민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겁니까? 당연히 행동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리스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여행중 경험한 그리스의 분위기만으로도 우리는 한껏 고무됐다.
일주일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어느새 천안함 희생 군인들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고 정부는 침몰 원인을 북한의 공격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나의 여행 경험이 요 몇 년간 이명박 정부의 계속된 공격에 조금은 지쳐있을 동지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