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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과학고 재학생이 말한다:
과학고는 창의성을 증진시키는가

나는 과학고등학교에 다닌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대 입시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하는 등 자칭 ‘세계 일류 고등학교’다.

그런데 과연 현재 과학고등학교가 ‘실력과 인성을 가진 창의적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가.

과학고 입학시험에 합격하려면 입학 전에 고등학교 수학1과정을 한 차례 이상 끝내야 하며, 입학 전까지 고등학교 과학 전 과정을 모두 끝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한 과목을 ‘전공’으로 골라서 올림피아드(경시대회) 준비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 아니라 ‘대수론+기하+정수론+조합론’을 수학 올림피아드 전문학원에서 공부해야 입상할 수 있다. 과학 올림피아드도 마찬가지다.

물론 올림피아드 학원에 다니려면 한 달에 수십만 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다. 그래서 돈 없으면 과학고 못 간다.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과학고에 들어오면, 더욱 웃기는 레이스가 시작된다.

과학고는 기본적으로 2년 동안(거의 다 조기졸업을 한다) 고등학교 과정과 대학교 과정 일부를 배우고 졸업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이미 입학 전에 과학고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다 배우고 들어온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별 흥미가 없다. 교사들 역시 일반고 3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은커녕 진도 나가는 데 급급할 뿐이다.

상대평가인 학교 시험을 잘 보려면 학교 수업보다는 과학고 내신 전문학원에서 나눠주는 문제를 푸는 게 더 유리하다. 결국 모든 과학고생은 어떤 식으로든 과학고 내신 학원에 다니게 돼 있다.

영재고는 아예 고등학교 과정을 1학년 때 끝내고 2, 3학년 때는 대학교 과정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결국 영재고에 입학해도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선행 학습과 올림피아드 준비가 필수며, 빠른 진도에 헉헉대다 보면 창의력 증진은 뒷전이고 문제풀이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기형적인 과학고/영재고 체제는 창의력을 증진시키지 못하며, 과학고는 있는 집 자식들만 다닐 수 있는 국립 입시 학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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