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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복 칼럼: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지펴진 위기의 불씨

2008년 9월 중순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이 붕괴되고 ‘금융 쓰나미’가 세계경제를 덮치자, 많은 사람들은 세계경제가 붕괴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당시 불안과 공포, 혼돈과 불확실이 세계 전체로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세계경제는 운명의 신 중 죽음을 관장하는 아트로포스(Atropos)의 손 안에 맡겨진 듯했다. 그녀가 실타래를 자른다면 세계경제는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죽음의 기로에 선 듯이 보였던 세계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세계경제의 파국을 상상하던 지난 2008년 9월을 다시 떠올려 본다면, 지금의 세계경제가 처해 있는 상황은 너무나도 평온해 보일 정도다.

현재의 시점에서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면 상당한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안정된 듯 보인다고 해서 세계경제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그리스 재정위기로 촉발된 남유럽 위기일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2009년 10월 집권한 그리스 정부가 2009년 재정적자 전망을 3.7퍼센트에서 12.7퍼센트로 대폭 상향조정하면서 표면화됐다. 이후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국채수익률과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2010년 5월 들어 그리스는 재정위기에 빠지게 됐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심화되자 유럽 전체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5월 2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으려고 1천1백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 금융안을 내놓았고 11일 유럽 재무장관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7천5백억 유로에 이르는 유럽안정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그리스 정부도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3백억 유로의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재정위기는 일단 한시름을 놓게 됐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재정위기 가능성이 증폭되면서 남유럽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것처럼 보이고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마저도 재정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모순

많은 논자들은 남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을 그리스인들의 게으른 국민성이나 방만한 사회복지지출에서 찾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어떤 후보는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그리스처럼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논의와 주장을 따른다면 그리스발 재정위기는 남유럽의 독특한 구조에서 나온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와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지금까지 세계경제 위기를 해소하려는 각 나라 정부의 대응이 세계경제에 새로운 모순을 양산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 위기의 폭발로 파국에 이를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을 막기 위해 각 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도의 특단의 조처로 경제에 개입했다.

이로 인해 각 나라 정부는 세계경제 위기로 폭발한 모순을 떠안게 되었고 새로운 모순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발 재정위기와 관련한 문제의 본질은 세계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모순을 국가가 떠안으면서 나타난 새로운 모순의 폭발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의 세계경제가 지표상으로 회복됐을지는 모르지만 향후 국가가 떠안은 모순들이 새롭게 폭발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 말해 최근 세계경제가 호전된 상황은 위기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순들의 형태로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불씨를 지핀 그리스 재정위기가 남유럽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경제는 앞으로도 더 험난한 여정을 더 겪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호부터 장시복 목포대학교 경제학과 전임 강사가 새롭게 칼럼을 연재한다.

그는 세계경제, 초국적 기업 등과 관련해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해 왔고, 주요 저서로는 《풍요 속의 빈곤, 모순으로 읽는 세계경제 이야기》(책세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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