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관련법 개정을 위한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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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 종묘공원에서는 여성노동관련법 개정을 위한 전국여성노동자대회가 전국여성노동조합, 호텔 롯데 노동자 등 4백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 날은 호텔 롯데 사측의 기만적인 성희롱 징계 대상자 발표가 있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여성 노동자 3백72명이 고소·고발한 성희롱 사건에 사측은 32명을 징계했다.
그러나 사측은 순전히 생색내기식으로 2명을 해고했다. 2명 중 한 명은 지난 9월부터 이미 회사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사실상 계약이 만료된 총지배인이었다.
더욱 위선인 것은 높은 지위에 있는 더 악질적인 가해자들은 반성문 한 장 쓰는 것으로 끝난 반면, 훨씬 경미한 가해자들에게는 더 무거운 징계(근신 1∼2개월, 견책)가 내려진 것이다.
그래서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호텔 롯데의 기만적인 성희롱 가해자 징계에 대한 여성·노동계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다.
호텔 롯데 여성 노동자들은 1백여 명이 참가해 회사측의 기만적인 징계 조치를 규탄했다. 그들의 손에는 "악질적인 가해자를 비호하는 호텔 롯데 각성하라!", "악질 가해자에겐 파면을, 경미한 가해자에겐 용서를", "성희롱 가해자가 승진이 웬말이냐" 등이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고무적이게도 호텔 롯데 남성 노조원들이 20여 명 가량 참석했다. 호텔 롯데의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성희롱 문제에 맞서 함께 싸워 왔다.
대회사를 한 지은희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오늘 집회엔 다른 여성노동자 대회와 달리 남성 노동자들이 많이 참가해줘서 무척 고무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지은희 씨는 모성보호와 여성의 노동권을 역설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모성보호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IMF 이후 여성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해 왔습니다. 여성은 정리해고 1순위였고, 여성 노동자들의 64%가 비정규직 일용직입니다. 여성들은 노동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하고 모성보호 강화하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라" "육아휴직기간 동안 임금의 70% 지급하라" 등을 절실히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은 IMF 이후 증가해 왔다.
한 여성 노동자는 "농협 측이 구조조정하면서 사내 부부 중 한 명을 강제로 그만두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었습니다. 전 이제 겨우 26살이고, 한참 일할 나이인데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습니다. 11월 30일 사법부는 농협의 여성 노동자들이 낸 부당해고 철회 소송을 기각했습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여성 노동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업주들은 60일의 유급 출산휴가비를 내기 싫어합니다. 제 배가 불러오자 원장은 몸도 힘든데 집에서 쉬라며 알아서 나가게끔 만들었습니다. 제 남편이 IMF로 인해 실직하자 저라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취업을 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회를 마친 후 명동성당까지 행진했다. 비록 집회 규모는 많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활기찼다.
그 날 집회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기보조원들(캐디)도 참가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돼 4개월째 사측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한성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들은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자로서 인정받고 원직복직될 때까지 힘차게 싸울 것입니다." 하고 외쳤다.
1998년 현대차 공장 점거 파업 때 놀라운 전투성을 보여준 현대차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 보고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리가 해고되어 하청업체 노동자가 되자 예전에 받던 임금의 60% 밖에 못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도전히 살 수 없어 투쟁해서 원직복직하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으로 싸웠습니다. 그 투쟁 덕분에 지난해 6월에 우리는 모두 원직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성 노동자 대회는 여성 노동자들의 높은 분노와 투쟁 의지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