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안의 논쟁:
자유 무역이 세계의 빈곤을 개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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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뒤에[9월 10일부터 14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는 세계 각국 정부 대표들이 모이는 세계무역기구(WTO) 5차 각료 회담이 열린다.
거의 4년 전에[1999년 11월 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WTO 3차 각료 회담이 회담장 밖의 항의 시위와 내부 분쟁 때문에 무산된 것은 기업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의 출현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분명히 칸쿤에서도 회담장 밖에서는 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내부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전개될 것이다. 한 가지 핵심 쟁점은 농산물 무역과 농업 보조금 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같은 주요 열강은 “자유” 무역과 “무역” 세계화의 장점들을 자랑한다. 이 “신자유주의” 신조의 이름으로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에 시장을 개방하라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요구한다.
이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는 사유화, 복지 삭감, 국제 은행가들에 대한 부채 상환, 세계 시장을 겨냥한 수출 생산, 다국적 기업 활동의 자유 [보장] 등 똑같은 기본 요소들에 기초한 처방전이 제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처방을 강요하기 위해 세계 주요 열강은 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런 교조의 핵심에는 지독한 위선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교조를 가장 역설하는 자들이야말로 자기 자신들이 내린 명령들을 스스로 위반하는 최악의 죄인들이다.
미국과 EU는 “자국의” 농업 기업들이 세계 전역에서 농산물을 판매하고 시장을 장악하고 이윤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막대한 보조금을 퍼붓는다. 그 과정에서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들이 궁지로 내몰리고 사람들이 빈곤에 빠지는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WTO가 제시한 수치들을 보면, 1999년도 미국의 농업 보조금 총액은 6백70억 달러[약 78조 6천억 원]였다. EU는 한술 더 떠 약 8백66억 달러[약 1백1조 6천억 원]였다.
미국 정부는 면화 생산 보조금으로 30억 달러[약 3조 5천억 원], 즉 1에이커당 2백30달러[약 27만 원]를 쏟아 붓는다. 그 때문에 미국 생산자들은 낮은 가격에 면화를 판매해 이윤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세계 시장의 4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에,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면화를 생산하라고 권고했던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생산자들은 미국과 경쟁할 수 없어서 파산하고 있다.
이것은 유별난 사례도 아니고 우연한 결과도 아니다. 미국과 EU의 정책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조지 부시는 미국 무역 정책의 목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옥수수·콩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팔리기를 바란다.”
EU도 퉁명스럽기는 마찬가지다. EU의 공식 정책은 “세계의 주요 수출업자라는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EU의 보조금은 소농민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과 EU의 농업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들에 주는 선물이다.
영국에서는 가장 부유한 20퍼센트의 농장주들이 유럽연합 공동 농업정책이 주는 보조금의 80퍼센트를 받는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세계의 빈곤을 감축시키기 위해서는 무역 규칙들에 초점을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국과 EU의 농업 보조금 철폐가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리 되면 세계 무역의 “공정한 경쟁 기반”이 조성될 것이고, 가난한 나라들은 더 많이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따라서 빈곤 퇴치도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방안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한 사람 중 한 명이 영국 노동당 소속 전 국제개발부 장관 클레어 쇼트다.
지금은 자선 단체 옥스팜(옥스퍼드 기근구조위원회)조차도 이것만이 세계의 불의를 타파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옥스팜은 자신들의 첫번째 “주요 정책 목표”가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시장 접근[상품이나 서비스 판매업자가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요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을 개선하고, 보조금을 받는 농업의 과잉 생산과 부유한 나라들의 덤핑 수출 사이클을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유 무역”은 현 체제가 저지르는 죄악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 커피 시장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커피는 “자유 시장”이나 “공정 경쟁”에 접근할 수 있는 농산물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커피 재배 농가들은 재앙에 빠졌다.
세계은행과 IMF는 수출용 커피를 생산해 현금을 마련하고 이 돈으로 서비스 부채를 상환하라고 베트남 같은 나라들에 말했다. 그 결과는 훨씬 더 많은 커피가 생산돼 국제 커피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브라질 같은 커피 생산 대국은 생산을 늘려 이윤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이는 다시 국제 커피 가격 폭락이라는 악순환의 소용돌이를 낳았다.
이 때문에 중앙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자들은 파산하고 기아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 5대 커피 회사들 네슬레, 크라프트, 프록터 앤 갬블, 사라 리, 그리고 독일계 치보 의 이윤은 폭등했다.
옥스팜은 올바르게도 이렇게 지적했다. “커피 회사들은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자유 시장에서 그들은 세계적 영향력을 이용해 전례 없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반면에, “가치 사슬의 다른 쪽 끝에서는 시장이 그다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점이 중요하다. 무역 규칙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공정 경쟁”에 대한 희망은 이런 핵심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커피 위기를 논하면서 옥스팜은 “시장에 기초한 기존 해결책들 공정 무역과 특산품 커피 개발”은 세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옥스팜은 올바르게도 “어떤 특정 해결책이 아니라 체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체계”의 현실은 거대 기업들과 그들에게 봉사하는 강대국들과 국제 기구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들과 국제 기구들의 후원을 받는 크라프트 같은 거대 기업과, 니카라과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나 온두라스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소농민이 “공정 경쟁”을 할 수는 없다.
레알 마드리드와 동네 조기 축구팀이 똑같은 규칙을 따른다고 해서 그 두 팀의 축구 시합이 “공정” 경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자본주의를 끝장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기 시작할 수 있는 즉각적 조처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전 세계에서 공공 서비스의 사유화를 강요하기 위해 WTO가 추진하는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을 좌초시키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 제공을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을 봉쇄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TRIPS는 기업들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전 세계에 강요할 수 있도록 도와 주기도 한다.
아마 가장 효과적인 한 가지 조처는 외채 탕감일 것이다. 지난 5년 사이에 커피 가격 하락 때문에 모든 커피 생산국들은 40억 달러[약 4조 7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그 커피 생산국 중 가장 작은 세 나라 온두라스, 베트남, 에티오피아 만 하더라도 1999년과 2000년에 47억 달러[약 5조 5천억 원]의 외채를 상환했다.
외채 탕감을 요구하는 세계적 캠페인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외채 문제 해결을 위한 조처를 약속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많은 가난한 나라들은 몇 년 전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외채를 상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2년에 니카라과의 “채무 상환”[원리금 상환]은 60퍼센트 상승했고 온두라스는 93퍼센트나 늘었다.
주빌리 외채 탕감 캠페인은 긴급하게 외채 탕감이 필요한 나라 53개국을 선정했다. 이 나라들이 상환한 이자는 1998년 2백19억 달러[약 25조 7천억 원]에서 2000년 2백50억 달러[약 29조 3천억 원]로,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이 엄청난 부담을 없애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생산하고 이를 통해 획득한 외화로 외채를 상환하라고 강요하는 이 정신나간 체제에 도전하는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의 처방은 늘 실패로 끝났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렸다.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초점)의 월든 벨로는 기업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의 가장 유명한 대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시장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람들을 오도해, 국제 무역 체제에 긴급하게 필요한 핵심 문제가 북반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결코 그렇지 않다. WTO가 무자비하게 강요하는 자유 무역 패러다임이야말로 핵심 문제다.”
벨로는 WTO가 “옥스팜이 시작한 시장 접근 캠페인을 지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서 “WTO나 거대 무역 강국들에 더 비판적이라고 생각되는 분야들의 개방화 확대에 동의하도록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역들은 공업 관세, 서비스, 무역 관련 분야 투자, 경쟁 정책, 정부 조달 등이다.”
협소하게 무역 규칙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기껏해야 세계의 불의와 빈곤에 도전하기 시작할 수 있는 진정한 쟁점들과 조처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세계 민중을 희생시켜 기업 세계화를 확대하고 싶어하는 자들의 의제에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