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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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옮긴이가 소개하는 책 《제국의 지배자들》 존 필저, 책벌레
‘참상과 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부제가 시사하듯이 이 책은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생생한 현실을 필름에 담 듯이 써내려 간 이 책을 읽다 보면,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 세상의 어두운 현실과 만나게 된다. 언론과 지식인들의 ‘침묵’ 속에 파묻혀 있던 현실이 드러난다.
필저는 ‘모범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도네시아가 얼마만큼 세계은행의 ‘모범생’ 노릇을 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를 펼쳐 놓는다. 족쇄 풀린 자본주의가 무기 거래를 비롯해 ‘자유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더러운’ 일을 벌여왔는지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대가를 치르다’에서는 13년 넘게 진행돼 온 이라크에 대한 봉쇄정책을 다룬다. 필저는 인터뷰와 현장 방문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 훨씬 전부터 봉쇄 정책으로 이라크에서 고통과 죽음이 진행됐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들을 ‘빈곤’으로 몰아간 것, 그것이 진정한 테러임을 새삼 강조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가장 근본적인 ‘기반’을 말살하는 것이야말로 테러가 아닌가? 필저는 진정한 테러리스트가 누구인지 되묻는다.
‘거대한 게임’에서 저자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과 무쇠 주먹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필저는 베트남에서 시작해서 소말리아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지속된 참혹한 전쟁들을 통해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결국은 석유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임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전쟁을 벌이는 ‘그들’은 변하지 않았으며, 평화로운 해결책을 무시하는 것도 ‘그들’의 본질임을 여실히 밝혀 주고 있다.
끝으로 ‘선택받은 자들’에서는 필저의 나라인 호주의 현실이 펼쳐진다. 옮긴이의 처지에서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에 비해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특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종차별의 현주소와 그것이 호주 사회에서 갖는 특수성을 통해, 제국의 지배자들이 자본의 뒤편으로 몰아내는 또 다른 한 무리의 ‘인간들’의 존재를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네 편의 다큐멘터리를 엮으면서 필저가 강조한 것은 제국이 휘두르는 강력한 힘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강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쳐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한 힘으로 짓누르고, 전쟁을 벌이고,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어 가고, 혹은 붙잡혀 고문을 받거나 차별을 당하는 속에서 사람들이 단지 조용히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침묵 속에 죽어간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필저는 굳센 의지가 담긴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현해 주고 있다.
“그 사건은 흑인이 백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그 희망과 자신감은 토착민들을 게으르고 쓸모 없는 원시인의 전형으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생각에 맞설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제국의 지배자들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줌과 동시에 그 지배에 맞서 또 다른 ‘인간’들이 힘겨워하면서도 저항하고 맞서왔음을 드러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지배력에 압도당해 무력해지기보다, 역사를 통해 저항해 왔던 ‘인간’들, 그 사람들의 대열에 나도 이제 함께 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문현아
인도 출신의 여성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영국 축구 스타 베컴의 아내로 잘 알려진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베컴과 더불어 영국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뽑혔다.
1997년 작은 것들의 신 으로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이 거머쥔 부와 명예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환경·반핵·반전·반자본주의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은 나 몰라라 하며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잇속 때문에 자연과 인간 공동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지배자들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준엄하고 신랄한 경멸로 가득차 있다.
아룬다티 로이는 두 편의 글로 이 책을 구성했다. 하나는 대규모 댐 건설을 반대하는 글인 ‘공공의 더 큰 이익’과 다른 하나는 핵군비 경쟁을 비판하는 ‘상상력의 종말’이다. 두 글 중 분량상의 비중과 호소력 측면에서 ‘공공의 더 큰 이익’이 압도적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공공의 더 큰 이익’에서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을 둘러싼 10년간의 논쟁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간디냐 네루냐의 문제로 비춰지고 있다고 말한다.
대규모 댐의 건설은 인간의 자연 정복을 웅변하는 위대한 과업으로 여겨졌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모두 대규모 댐 건설을 사회주의를 이룩하는 과업인 것처럼 주장했다.
역사상 제3세계의 많은 좌파가 민족자립경제 건설을 위한 근대화 전략을 채택한 지배 계급 일분파를 추종하거나 이런 전략을 취하는 지배 계급으로 변신해 왔다.
이집트의 나세르와 아랍 민족주의에 대한 중동 지역 공산당들의 의탁,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에 대한 남미 좌파들의 의탁과 마오주의, 카스트로주의, 김일성주의도 모두 이런 전략의 일종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근대화 과정에서 대규모 댐을 연이어 건설한 네루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간디의 전략, 즉 자급자족적 옛 인도 공동체로 되돌아가자는 것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글 서두에 자신이 개발에 무조건 반대하는 전통 옹호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연 댐 건설은 필요한 것인가? 이 책은 대규모 댐 건설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해 준다. 아룬다티 로이가 자신에게 결정적 도움을 줬다고 말한 패트릭 매컬리의 《소리 잃은 강》도 출판돼 있으니 함께 읽는다면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동강댐 건설을 둘러싼 정부와의 충돌에서 쟁점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경제적 효용 사이의 대립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는 대규모 댐 건설이 경제적 효용이 없으며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수몰되는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다고 말한다.
소리 잃은 강 의 패트릭 매컬리는 댐 건설이라는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기업과 정부 사이의 부정부패와 탐욕을 강조한다. 인도의 경우에 이 댐 건설을 둘러싼 돈 문제는 세계은행의 이익과 연관돼 있다(세계은행은 중국의 대규모 댐 개발 사업의 주된 재정 후원자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이 대규모 댐 건설은 자그마치 10년이나 걸렸는데도 미완성인 상태로 계속 추진되고 있다.
댐 건설 초기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라며 완전히 무시돼 온 수몰 지역 원주민들의 저항이 이제야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강제 이주해야만 한 원주민의 수도 수천만 명에 이르렀다.
댐 건설로 인해 집안에 물이 차오르자 원주민들은 자신의 집에 사슬로 몸을 묶고 물 속에 함께 수장되겠다는 결의로 이들을 끌어내려는 경찰과 맞서 싸운다.
아룬다티 로이의 글은 매혹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종종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냉정하게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고 폭로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호소력 있고 많은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끈다.
이 글은 인도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인 댐 건설 반대 투쟁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침 내년 1월 인도에서 제4차 세계사회포럼이 열린다니 인도의 반자본주의 활동가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박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