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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다국적군의 점령도 대안이 못 된다

유엔 다국적군의 점령도 대안이 못 된다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포함돼 있는 부시 정부 내 한 그룹은 이라크 전쟁에 사용한 처음의 전략(“자원 절감형 전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여전히 주장한다. 이 전략이란 소수의 강력한 군대로 이라크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라크에 더 많은 군대를 보내면 두세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그들의 목표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걱정한다.

또 다른 그룹은 다른 국가로부터 군대를 모으기 위해 유엔을 이용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하려는 일에 대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으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한다. 탐탁지 않겠지만 이라크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시는 이 두번째 방식을 따르기 시작했다. UN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때는 프랑스와 독일을 “낡은 유럽”이라고 부르더니, 이제 부시는 “오랜 친구”라고 말을 바꿨다.

유럽에 의존하는 것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의 강경파들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다.

애초에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음을 경쟁 강대국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로부터 후퇴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그들은 여긴다.

그러나 유엔을 이용하지 않고 미국이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부시가 유엔을 가리개로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부시는 유엔을 이용해 이라크 점령을 안정시키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선제 공격 계획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대상에는 시리아, 이란, 북한,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쿠바도 포함돼 있다.

미군 군복에서 유엔 군복으로

하지만 유엔의 승인을 받은 점령도 지금의 미군 점령보다 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예를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은 31개국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민주주의가 전혀 없다. 권력은 점령군들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다.

유엔 다국적군이 평화적 대안이 못 된다는 점을 얘기하기 위해 굳이 소말리아와 코소보 등의 예를 열거할 필요도 없다.

유엔과 유엔 다국적군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만행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1991년 걸프전 때 유엔은 쿠웨이트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름으로 기꺼이 미국의 가리개가 돼 주었다. 쿠웨이트는 세습 군주가 통치하는 나라인데 말이다.

수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유엔 다국적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학살됐다.

전쟁이 끝난 뒤 13년 동안 잔혹한 경제 제재를 이라크에 가한 장본인도 바로 유엔이었다. 미국의 명령을 받아서 말이다.

지난 8월 UN 건물이 테러의 대상이 됐는데, 이것은 UN이 미국 점령 당국에 협조해 왔기 때문이었다.

유엔이 평화적 대안이 못 되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필요할 때 유엔을 이용했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간단히 무시해 왔다.

떡고물

주요 시민단체의 일부 활동가들은 마치 프랑스와 독일이 이라크인들의 자치를 지지하는 듯이 언급하면서 이들을 두둔한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은 이라크 점령에서 부차적 구실을 하는 대가로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나오는 떡고물을 얻으려고 할 뿐이다.

이 국가들은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미국과 논란을 벌이는 것이지 이라크인들의 해방으로 위해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의 논쟁은 어떤 서방 열강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 동안 이라크 민중을 지배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것이다. 여기에는 이라크인들의 자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가 깔려 있다.

1945년 조선이 해방된 뒤 미국·소련·영국 등의 열강은 조선을 어떻게 신탁통치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란을 거듭했다. 어떤 방식의 신탁통치가 자국에게 더 이익이 될까를 둘러싼 줄다리기였다.

그 가운데 어느 국가도 조선인들의 자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한 미군정 사령관이었던 하지는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같은 혈통을 가진 고양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에 조선인들은 인민위원회 등의 자치 기관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라크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점령군의 철수를 요구해야 한다. 유엔의 군복을 입은 점령군도 이라크인의 자치를 대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