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진화심리학자가 ‘제빵왕 김탁구’를 본다면
〈노동자 연대〉 구독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에서 파생해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우파 과학’이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 본성은, 선사시대 인간 경험이 축적된 것으로 현대인의 유전자에 기억됐다고 한다. 현재의 사회제도, 정치·경제적 불평등,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 전쟁, 종교 그리고 더 나아가 문화 자체가, 인간의 본성과 인간 생물학이 거시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본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드라마는 배다른 형제 김탁구와 구마준의 갈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제빵회사 사장 구일중과 가사 도우미 김미순의 아들 김탁구와, 회사 비서실장 한승재와 사장 아내 서인숙 사이에서 태어난 구마준이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다. 구마준은 구일중 사장이 김탁구를 편애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제빵 경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탁구를 이기려 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먼저, 사장 구일중이 아들 구마준보다 김탁구에게 인간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구일중의 유전자를 김탁구가 갖고 있고 구마준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유전자 번식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도록 진화해 왔다고 본다.
드라마에서 구마준과 김탁구와의 경쟁에서 김탁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진화심리학에서는 기업가의 유전자가 있다고 본다. 기업가에게 중요한 인간 형질인 지능과 성실성에서 구일중은 비서실장 한승재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구일중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김탁구가 한승재의 아들 구마준을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김탁구는 제빵사 아버지의 ‘제빵 유전자’와 놀라운 후각도 물려받았다.
그러면 진화심리학의 ‘제빵왕 김탁구’ 읽기는 올바른가. 진화심리학은 유전자에 각인된 인간 본성이 불변하는 것으로 여긴다. 아버지 구일중이 구마준보다 김탁구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끼는 것은 구마준의 이기심이나 탐욕, 비서실장과 아내의 ‘부정’ 때문이 아니다. 단지 구일중의 유전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김탁구를 알아볼 뿐이다. 그리고 김탁구의 불우한 청소년 시기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제빵 재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유전자를 잘 타고난 김탁구가 제빵을 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할 것이다. 이렇듯 진화심리학은 인간 관계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 지극히 편협한 생물학적 이해를 담고 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기획 의도는 “물질보다는 인의지정을 지키며, 사필귀정을 믿고, 자신의 꿈을 소중히 하며 내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내일의 행복도 얻을 수 있는 결말을 꿈”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자가 보는 결말은 이미 해당 인물의 유전자 안에서 결정돼 있다. 김탁구는 승승장구할 것이고 유전자 전쟁에서 뒤진 구마준은 낙오할 것이다.
현실에서 진화심리학의 유전자 결정론이 낳는 더 큰 비극이 있다. 인간 본성은 불변하고 인간은 유전자의 로봇이기 때문에 김탁구는 성공할 것이고, 현실의 제빵회사 노동자들은 ‘게으름뱅이 유전자’를 타고나기 때문에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는 인간 본성의 숙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과학을 믿어야 할까. 과학은 중립적이지 않다. 진화심리학은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확대에 비롯한 우파 생물학의 산물이다. 진화심리학은 기업가들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기업주들에 맞선 우리의 저항은 유전자 결정론적인 숙명론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