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택 칼럼:
양신(梁神)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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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된 주말 저녁, 만사를 제쳐 두고 오랜만에 TV 앞에 앉았다.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양준혁 선수 은퇴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입단 첫해부터 타격왕과 신인왕에 올랐고 9년 연속 3할 타율에 4차례의 수위타자, 13년 연속 올스타, 8번의 골든글러브, 역대 최다홈런, 역대 최다안타, 역대 최다타점 … “방망이를 거꾸로 쥐고도 3할은 친다는” 특유의 ‘만세타법’ 달인이자 이종범과 더불어 야구의 신이라고 불리던 사나이.
팬으로서 그의 마지막 플레이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간 양준혁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양준혁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00년 초. 그가 부회장을 맡으며 선수협의회를 주도하면서부터였다.
1988년 최동원과 김시진, 김용철과 장효조 등 주역들이 보복성 맞트레이드를 당하며 1차 결성시도가 좌절된 지 10여 년. 열악한 처지에서 운동하는 다수의 후배, 동료들을 위해 양준혁이 다시 그 총대를 매면서부터였다.
그는 책을 사서 공부하고, 각계로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1999년 한일슈퍼게임이 열리던 일본에서 송진우 등과 치밀하게 거사(!)를 계획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1월 선수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짬짜미
본때를 보여 주겠다며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였던 두산재벌가의 박용오가 ‘팀 해체 불사’를 천명하고, 삼성·LG·해태 등 전 구단들이 주동자 전원 방출과 재계약 불가를 짬짜미해 협박해도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각 구단이 선수들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지방에 격리시키고, 감독과 코치들을 총동원해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접촉해 탈퇴를 종용하는 협박과 회유의 와중에서도 그는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소탈한 카리스마로 동료들을 격려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보복으로 시즌 개막 전에 LG로 트레이드됐고, 그 다음 해에는 어느 구단도 계약에 나서지 않는 곤혹스런 처지에 처하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매번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며 양준혁과 그 거사 주동자들, 야구계의 풍경들을 간간이 지켜봐 왔다. 2군선수 최저연봉이 6백만 원에서 갑절 이상 오르고, 선수협회의 활동이 인정되는 등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결성 당시의 집행부는 사실상 강제퇴진 당했고, 선수협회는 활력을 잃어 갔다.
그리고 마해영, 심정수, 최태원, 박충식 등 각 팀에서 선수협의 중추를 이루었던 선수들 대부분은 구단 측의 냉대와 견제에 의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은퇴하면서 잊혀져 갔다. ‘회장님’ 송진우가 버텨 나갔고, 오직 양준혁만이 피나는 노력으로 씩씩하게 부활했다.
그래서 나는 양준혁을 볼 때마다 야구선수 중 가장 똑똑했다는 ‘영원한 롯데 4번’ 마해영, 이승엽보다 힘이 좋았던 ‘두산의 삼손’ 심정수, 연속경기 최다출장 기록을 수립해나갔던 쌍방울의 ‘유쾌한 철인’ 최태원, 15회를 완투하며 선동렬과 전설의 사투를 벌였던 ‘원조 서브머린’ 박충식 등 의인들을 함께 떠올리곤 했다. ‘먹고살만 했던’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변변히 나설 처지가 못되는 동료들을 위해, 재벌집단의 불의에 맞섰던 그들이 그리웠다.
2010년 가을, 이제 더는 그라운드에서 “양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분노하게 만든 야구계의 현실과 그에게 좌절과 시련을 가져다준 재벌의 장벽은 의연히 높다.
6백만 관중 시대를 달성한 지금도 전체 5백여 선수 중 절반 이상이 연봉 3천만 원 이하를 받고, 상당수의 2군 선수들은 여전히 용품회사에 방망이 값을 빚진다. 평균 정년 5년에 퇴직금도 없다. 연봉협상을 할 때 대리인의 조력도 받지 못하고 구단이 통보하는 액수를 받아들여야 한다. 연봉조정위원회는 구단주들로 구성되고 트레이드를 거부하면 방출된다.
그럼에도 자본과 공생하는 미디어에는 이처럼 추악한 실상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사회적 의제에서도 배제된다. 무수히 쏟아진 양준혁 관련 기사들에서 선수협 이야기는 마지못해 한두 마디 그나마 두루뭉술 언급되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턱도 없이 ‘양준혁의 푸른 피’를 들먹이며 양신과 삼성구단의 연고를 신비화해 아름답게 윤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럼으로써 ‘반항아’ 양준혁과 삼성재벌 무노조주의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에 물을 탄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양준혁은 은퇴하는 선수들이 흔히 하는 ‘좋은 지도자가 돼 어쩌구저쩌구’ 식의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설립돼 있는 선수노조와 노동3권, 최소한의 공정한 대우와 존엄이 아닐까.
제법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나는 확신을 가지고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