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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손학규 당선을 “환영”해야 했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넣었고, 강령에서 “중도 개혁주의”를 삭제했다. 세계경제 위기와 촛불항쟁 등을 거치며 지속되고 있는 대중의 급진화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손학규가 당대표로 당선한 것은 민주당의 색깔 바꾸기가 그다지 신선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손학규가 대표로 당선한 비결은 기껏해야 ‘비호남’이라는 것밖에 없다.

10월 11일 민주노동당을 방문한 손학규를 환대하는 이정희 대표 ‘반한나라’를 내세우면서, 반성도 안 한 한나라당 출신을 환영하는 모순이 민주대연합론의 현주소다.

손학규는 14년 동안 한나라당의 정책을 충실히 지지했고, ‘사상 전향’을 분명히 한 적도 없는 한나라당 출신이다. 그는 한나라당 탈당 직전까지 “나는 한나라당 자체”라고 했다.

그러다가 2007년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갑자기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 타고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고 이제는 당대표가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손학규의 오랜 정치적 신념은 ‘보편적 복지’와 거리가 멀다. 그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에서 손학규는 자신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판 제3의 길”이라고 했다.

“나는 한나라당 자체”

‘제3의 길’은 진보의 탈을 쓰고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하는 길일 뿐이라는 점이 영국 블레어 정부를 통해 입증됐다. 사실 손학규의 노선은 서유럽의 우파 사회민주주의조차도 못 된다. 후자는 보수당과 흡사한 정책을 구사했지만 조직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손학규는 조직 노동계급 기반이 전혀 없다.

그리고 손학규는 자신의 책에서 레이건과 대처의 민영화, 복지 축소,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경제를 살렸다며 칭찬했다. 그는 무상교육, 실업수당, 주택보조금, 높은 의료보장 등 복지정책이 ‘영국병’을 낳았다는 대처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고 기회를 찾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냉혹하게 쓴 맛을 보여 주는 것”이 국가의 구실이라고 썼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보편적 복지’와 대비되는 개념인 “시혜적 복지”와 “생산적 복지”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런 오랜 소신 때문인지 이번 전당대회에서 손학규는 복지·진보 담론에 가장 거리를 둔 후보였다.

손학규는 한미FTA도 적극 지지했다. 한미FTA 체결을 적극 지지했던 정동영이 이제야 일부 조항 재협상 요구를 하며 뒷북치는 것도 문제인데, 손학규는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라며 이런 뒤늦은 말바꾸기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손학규는 4대강 사업을 두고도 ‘4대강 사업과 영산강 살리기 사업은 다르다’며 4대강 반대 운동의 힘을 뺐다. 전남도지사 박준영의 배신적 태도가 사실은 민주당 자체의 문제라는 걸 확인해 준 셈이다.

그래서 손학규와 민주당을 대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태도는 매우 아쉽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손학규가 당선하자 “환영”하고 “축하”한다고 발표했다. 손학규가 당선 후 이정희 대표를 찾아와서 “앞으로 손을 꼭 잡고 나아가자”고 하자, 이정희 대표도 “견해의 차이가 있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화답했다.

이정희 대표가 그나마 촉구한 내용은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공동대응 문제였다. 하지만 한미FTA 자체를 반대해 투쟁해 온 민주노동당이 투쟁의 대상이었던 민주당의 때늦은 재협상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호응하는 것은 문제다.

2007년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당시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걸레를 빤다고 행주가 되는 것도 아니고, 손 전 지사가 탈당했다고 한나라당의 전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이 2007년 대선에서 손학규 지지 선언을 하자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에 충실했던 손학규 전 지사와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 후보는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이념과 정책에서 전혀 차별성을 느낄 수 없다”며 이상범을 출당시켰다.

그 후 손학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춘천에서 ‘칩거’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민주노동당의 전략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반MB민주연합을 통한 연립정부 수립 전략에 충실하면서 연합의 대상인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무뎌지고 과거를 묻지 않고 진보적 덧칠을 해 주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손학규의 전력을 기억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진보의 차별성을 분명히 보여 주기는커녕 도대체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조차 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