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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상설연대체 제안에 대해:
개혁주의 정치는 위기의 효과적 대안이 못 된다

이 글은 〈레프트21〉 43호에 실린 동명의 기사 전문이다.

민주노총은 올해 3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반MB공투본’을 확대재편하는 방식의 상설연대체 건설 방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 역주행과 탄압에 맞서 진보민중진영의 광범위한 단결”(‘민주노총의 상설연대체 구성안’)이 새로운 상설연대체의 취지라고 했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이를 위해 억압을 강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진영의 광범한 단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상설연대체 제안은 이런 노력을 담고 있다는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래서 다함께는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에 초반부터 참가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에 제안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가 11월을 앞둔 현 시점까지도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다들 ‘광범한 단결을 위한 상설연대체 건설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지만 지금 문제는 진정한 단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답하는 것이다.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지지한 민주노동당 상설연대체는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떠받치는 기구가 돼서는 안 된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지난 10월 1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상설연대체 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는 처음으로 상설연대체 건설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이날 토론회에 다함께를 대표해 발제자로 참가했던 나는 이날 첨예하게 논쟁이 된 쟁점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설연대체가 진정한 단결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주장하려 한다.

개혁주의 정치가 낳은 문제

진보진영은 대략 2005년 말부터 2007년 1월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하기 전까지 상설연대체 건설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다함께는 자주계열이 상이한 정치 조류(단체)가 모일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보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인 “민족 자주”와 “반미”를 고집해 다른 정치 경향들의 상설연대체 참가를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했지만 민주노총의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제정파를 아우르지 못”(한국진보연대 전 집행위원장 정대연, ‘2012년 진보운동의 대도약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하면서 한국진보연대는 자주계열의 결집체가 돼 버렸다.

그러나 10월 19일 토론회에서 자주계열을 대표해 발제한 전국여성연대 최진미 집행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조직 결정이 이러저러한 사정과 이유로 미뤄지더니 유야무야되는 과정을 보면서 실망과 안타까움이 컸[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진지한 돌아보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진보연대 장대현 집행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진보연대가 출범 때부터 반 쪽짜리가 된 것은 대중조직 대 정치 단체간의 분열”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대중조직 대 정치 단체 간의 분열이 문제였다면 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며 한국진보연대의 실패를 좌파 정치 단체들의 ‘분열주의’적 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을 반박했다.

노동전선 김태연 집행위원장도 “전국민중연대에서 한국진보연대로 바뀔 때 핵심은 자주계열의 전략 문제였다. 이를 얘기하지 않은 채, 마치 일부 정치 단체들이 발목을 잡았지만 대중조직이 결정해 추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왜곡이다” 하고 말했다.

자주계열은 자신들의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를 연대체에 강요하려 한 것 때문에 한국진보연대가 최종 자주파의 재결집체로 돼 버렸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계열의 좌파 민족주의 정치는 실상 개혁주의 정치다. 개혁주의 정치의 핵심 특징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하면서 이를 위해 계급연합(동맹)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 때문에 계급연합을 지향한다. 통일을 위해서 민족 부르주아지(이른바 민족 자본가나 중소자본가)와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 친미 군사독재의 경험, 외세에 의한 분단 상황이 이런 좌파 민족주의의 뿌리다.

“좌파 민족주의는 흔히 사람들을 고무해 현지 지배계급의 일부에 맞서 투쟁하게 만든다. 그러나 착취자들과 피착취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의 ‘민족(국민)’ 이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좌파 민족주의는 노동자, 농민, 하층 중간계급의 분노에 초점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런 분노를 개혁주의적 해결책으로 이끄는 경향도 있다. 국내 수준에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기존 자본주의 국가의 틀 안에서 덜 민족주의적인 해결책에 반대해 더 민족주의적인 해결책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크리스 하먼,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 141~142쪽)

그래서 자주계열은 민족적 과제 해결의 가장 커다란 방해 요인인 미국과 한나라당에 맞선 투쟁이 우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 중간계급이나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민족화합적’자본가들과 냉전적 자본가들을 구별한다. 가령, 죽은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은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보면 통일인사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정주영은 노동조합을 탄압하려고 식칼 테러까지 서슴지 않았던 노동자의 적이다. 또, 자주계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6.15공동선언’의 주체였던 김대중도 협력해야 할 통일인사가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고통받았던 노동계급에게 그는 적일 수밖에 없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의 여파 속에서 일어난 롯데호텔노조와 사회보험노조 탄압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자주계열은] 김대중이 북한에 화해적이고 협력적인 정책을 추구하려 애쓰는 듯하다 해서 그를 공격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후 김대중은 이를 이용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진보진영의 다수파를 서로 이간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려 해왔다.”(김하영·최일붕, 《개량주의와 변혁 전략》, 다함께, 40쪽)

신자유주의 정부였던 김대중과 노무현을 경험한 민주노총 소속 선진노동자들이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김대중·노무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자주계열이 주도하는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근본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주계열의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와 강령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안한 상설연대체의 기본 취지인 “노동계급의 단결 강화”를 성취할 수 없다.

만약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계열이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를 상설연대체에 또다시 강요하려 든다면 새로운 상설연대체는 다시 한 번 한국진보연대의 재판(再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NL경향이 자신들의 강령과 전략을 나머지 연대 대상들에 강요하려 했기 때문에 폭넓은 연대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다 … 심지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세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 그 결과, 당시 계획에 따라 출범한 한국진보연대는 압도적으로 NL경향 단체들만 참여했고, 민주노총도 합류하지 않는 등 진보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연대체가 되지 못했다.”(김하영, ‘진보진영의 연대, 연합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르크스21》 4호, 90쪽)

민주대연합

한편, 우려스럽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상설연대체 건설 제안문에 “범민주 세력까지도 견인”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국진보연대도 “반MB연대의 완성은 2012년 ‘진보적 민주연립정부’ 수립”이라고 본다.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 연립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공유하는 이런 구상은 민주노동당을 더욱 우경화시키고 있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의 박경순 부소장은 “[6.2지방선거를 통해]우리 당은 반MB연대를 선도[했다.] … 운동권 정당의 탈을 벗어던지고 대중정치를 선도”(‘변화와 혁신을 선택한 민주노동당, 전망과 과제’)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투쟁하는 진보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는 것이다.

2007년 한국진보연대(준) 출범식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계열이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를 상설연대체에 강요하려 든다면 상설연대체는 한국진보연대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진보를 염원하는 대중은 투표와 투쟁을 통해 민주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6.2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구하려 애썼다. 진보적 강령을 내세워 대중의 신뢰를 획득한 뒤, 이 신뢰를 대부분 민주당에 헌납한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 시절 추진한 비정규직 악법 제정,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을 반성하고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상대방의 잘못은 뒤로 제쳐두고” 민주당과 연합을 위해 “10년 해 온 싸움도 미뤄둘 의향이 있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민주당과 선거연합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 지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멀리 보고 민심에 투자한 것이라 확신한다.”(‘반MB연합과 진보대연합 병행 추진돼야’ 〈민중의소리〉, 2010년 7월 3일) 하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반MB 민주연합을 공공연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는 계급연합을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10월 19일 토론회에서 한국진보연대 장대현 집행위원장은 “계급연합은 기층 대중조직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상설연대체가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쟁점을 회피했다. 그러나 자주계열은 오래 전부터 민주당과 하는 연합은 진보정당이 맡고 대중투쟁은 상설연대체가 맡는다는 ‘양날개론’을 주장해 왔다.

“일반적으로 진보정당과 전선조직(상설연대체)과의 관계를 새의 양 날개로 규정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하지 않다. 진보정당과 전선조직의 관계는 잇몸과 치아 사이의 관계다. 진보정당을 전선조직이라는 잇몸 위에 돋아난 치아로 즉, 한 몸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학적이다.”(한국진보연대 전 집행위원장 정대연, ‘운동가들의 가슴에, 투쟁하는 민중의 마음에 한국진보연대의 깃발을 세우자’, 2009년, 강조는 인용자의 것)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반MB 민주연합과 상설연대체의 연관 관계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부르주아 정당(민주당)과 동맹하는 정책은 우리 편 투쟁의 요구를 낮추는 효과를 발휘할 뿐 아니라 투쟁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예컨대, 지난해 노무현 자살로 표면화된 반이명박 정서는 운동으로 발전해 6월 10일 10만 명이 모이는 범국민대회에서 정점에 올랐다. 이날 시위는 같은 시기에 대량해고에 맞서 점거파업을 하고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래로부터의 격앙된 대중 정서에 부담을 느껴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NGO들과 한국진보연대는 민주당과 계급연합(민중전선)을 본격화해 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반정부 운동이 민주당을 추수하는 개혁주의 세력의 통제 속에 가라앉자, 신속하게 언론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어서 점거파업을 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진보연대는 민주당과 공조하면서 결정적 시점에 운동의 김을 빼고 통제하는 구실을 했다.

자주계열이 추진하는 민주당과의 연합은 “민주당의 강령 수준을 넘지 않고, 민주당을 공개 비판하지 않아, 민주당과 최소공배수적 동맹을 유지하는 ‘민주대연합’ 노선이 개혁주의의 문제점을 낳고 있음”(최일붕, ‘상반기 정치투쟁의 연장이자 대미 장식으로서 쌍용차 투쟁’, 〈레프트21〉 13호)을 보여 줬다.

자주계열의 계급연합 추진이 계속된다면 광범한 단결을 통해 대중투쟁을 만들어내겠다는 상설연대체가 오히려 대중투쟁의 전진을 가로막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계열은 상설연대체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을 떠받치는 기구가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설연대체 추진은 신뢰와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사안별 연대체는 필요없는 것인가

10월 19일 토론회에서 또 다른 쟁점은 ‘사안별 연대체가 필요한가’였다. 한국진보연대를 대표해 발제한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공동대표는 “적지 않은 사안별 투쟁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백했고, 그 한계가 상설연대체 논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한쪽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전세가 유리하면 들어오고, 나빠지면 슬쩍 빠져나가는 관계라면 책임감을 요구할 수도 담보할 수도 없다”며 사안별 연대체가 문제인 양 주장했다.

이것은 사안별 연대체가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특히, 새로운 쟁점이 운동으로 떠오를 때)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을 전혀 보지 않는 태도다.

자주계열은 한국진보연대 건설 초기에도 사안별 연대체 난립과 무용론을 펴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해서 태도를 바꾼 바 있다.

“사안별 연대운동도 전선운동의 중요한 방식이다. 최근 평택미군기지반대투쟁, 파병반대투쟁, 한미FTA 저지투쟁, 비정규직철폐투쟁 등 중요한 투쟁은 어김없이 사안별 연대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사안별 연대체가 광범위한 진보세력의 단결과 공동투쟁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를 다 해소하고 하나의 상설적인 연대체로 통합하려 한다면 연대의 폭은 매우 협소해질 것이고 투쟁의 위력도 반감되고 말 것이다.”(한국진보연대 10문10답 자료집)

수년 전에 제기했다가 철회한 사안별 연대체 무용론을 다시금 제기하는 것은 자주계열이 여전히 한국진보연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성찰적 평가를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사회진보연대 이현대 공동운영위원장은 “만약 상설연대체 제안 단체가 민주노총이 아니었다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한국진보연대는 민주노총만 가입하면 정리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고 반박했다.

한편, 민주노총 지도부는 올해 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상설연대체 건설을 결정했기 때문에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다시 한 번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제 시작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는 반드시 내년 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 한국진보연대 가입 여부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최대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였기에 최종 승인 여부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여야 한다. 무엇보다 상설연대체의 정치적 내용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의원대회에서 이를 충분히 심의해야 한다.

또, 상설연대체 건설 계획을 미리 확정짓고, 논쟁적인 주제는 일단 덮어두고 간다는 생각보다 제기된 쟁점을 진지하게 토론해 다양한 세력을 광범하게 아우르는 상설연대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 제안이 그동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진정한 단결을 이루고 대중투쟁을 건설할 수 있으려면 위에 제기한 조건들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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