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인터뷰:
마르크스주의와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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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르헨티나의 문화 단체 ‘이성과 혁명’(RAZÓN Y REVOLUCIÓN)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한 인터뷰를 옮긴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오늘날 제국주의 상황, 미국 힘의 상태를 탁월하게 짚어낸다.
당신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레닌 정식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제국주의에 관한 레닌 책의 원래 제목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입니다. 따라서 흔히 알려진 제목과는 뜻이 상당히 다릅니다. 저는 레닌과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다른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 즉 동시대 자본주의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21세기 초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서 제국주의를 자본들 간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 간 지정학적 경쟁이 상호 작용하면서 모순적이고 불안정한 결합(데이비드 하비가 옳게 지적한)을 이룬 것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제 최근 저작인 《제국주의와 세계 정치경제학》(2009)이 이 점을 다뤘습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세계적 열강의 경제 외적 활동이 종속국 토착 부르주아지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정치적 관계를 통해 저발전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동일한 현상을 가치법칙이나 세계적 경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방금 하신 말씀이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을 정확히 소개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레닌은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불균등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레닌은 단지 나라와 지역들 간 경제적 불평등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본래 그런 불평등을 낳을 수밖에 없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가 계속 변하면서 지배적 열강 간 안정적 동맹 결성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레닌은 “50년 전에 독일은 가난하고 중요하지 않은 나라”였지만 자기 시대에 들어 독일이 주요 제국주의 열강으로 부상한 것을 지목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 지구적 자본축적 과정의 불균등한 성격 때문에 새로운 열강이 미래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레닌은 확실히 종속이론가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가 ‘노동귀족론’ 등 이론적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나라와 지역들 간 관계가 가치법칙과 세계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 레닌이 공감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위기가 제1·2차세계대전 때처럼 제국주의 열강 간의 전쟁을 낳을까요?
단기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들’은 약하거나(러시아), 분열해 있거나(유럽연합), 종속돼 있거나(일본), 혹은 신중해(중국) 미국과 맞서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대결을 바랄 만큼 절망적 처지에 몰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당장은 무역과 환율 문제로 그렇고 앞으로 몇십 년간 갈등이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미래에 미국과 중국 간 심각한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실재합니다.
제국주의 열강과 비교해 종속국을 정의할 때 흔히 외채라는 범주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이 가장 많은 빚을 진 나라가 됐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은 논란이 많은 주제입니다. 고(故) 지오바니 아리기 같은 급진 학자들은 미국의 외채가 미국 제국주의의 쇠락을 보여 주는 징후라고 주장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 사이에 영국이 겪었던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최근 출간된 《서브프라임 네이션》에서 허만 슈워츠는 이 현상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일부 나라들 사이에 금융 이동의 순환이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 산유국도 이 순환에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미국 국채와 민간 채권을 사들였고,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훨씬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는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슈워츠는 미국 주택 금융 시스템으로 매개되는 이 금융 순환 덕분에 미국이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슈워츠는 수많은 통계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가 미국이 갈수록 중국의 대출에 의존하는 상황이 낳는 불안정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잠재적 경쟁자일뿐 아니라,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열강이 약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돈을 빌려 줬습니다. 19세기 영국과 미국 간 관계가 그랬고 1940년대 미국과 서유럽 간 관계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흥 자본주의 열강이 패권 국가에게 돈을 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슈워츠의 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금융 이동이 채권국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경우 “새로운 경제 엘리트가 된 중국공산당의 엘리트 자제들”은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을 통해 유지되는 저임금 수출 주도 경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 그는 자신이 ‘억제된 부자들’이라 부르는 일본, 독일과 기타 유럽 나라들도 미국 금융시스템이 만드는 엄청난 양의 채권들 중 일부를 사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이들 나라의 금융시스템이 미국만큼 유동성을 공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체 상황이 대단히 모순적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30년대처럼 채권자와 채무자 간 갈등은 갈수록 현 세계경제 위기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 간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로존 위기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독일과 (주로 독일 제품을 수입하려고) 독일과 프랑스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린 남유럽 주변부 나라들 간 갈등입니다.
당신은 독점 자본이란 개념이 오늘날 자본축적 단계를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까? 독점 자본은 가치법칙, 국제 경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저는 독점 자본이 별로 유용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개념은 말 그대로 각 산업 부문을 하나의 기업이 지배하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조직된 자본주의’가 절정에 이른 20세기 중반, 한 기업이 국가의 도움으로 특정 국민경제 분야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던 때에도 그 기업은 국내외 자본의 경쟁 압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지난 몇십 년간 이런 특권적 지위는 사라지거나 심각하게 손상됐습니다. 오늘날에는 엄청나게 크고 산업 내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조차 외국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미국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의 쇠퇴와 도요타의 부상을 보면 알 수 있죠.
가치법칙은 ‘복수 자본’ 간 경쟁에 의해 관철됩니다. 독점 자본이라는 개념이 단지 한 산업 부문뿐 아니라 (마르크스는 비독점 기업에서 독점 기업으로 잉여가치의 재분배를 말할 때 독점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경제 전체에서 경쟁의 종식을 뜻하는 한, 그 개념은 가치법칙의 종말을 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란과 스위지가 《독점자본》에서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을 폐기한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런 결과였던 것이죠. 그러나 그들 주장의 전제 조건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독점자본은 경제 전체에 걸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은 과점 경쟁입니다. 굴리에모 카르케디[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이런 경쟁 형태를 가치법칙의 틀 내에서 잘 설명했습니다.
“(협소한 의미에서) 독점은 존재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는 과점을 주로 볼 수 있다. 과점은 크고 선진 기술을 가진 자본 단위들이 선진 기술을 대규모로 투입해 시장의 큰 부문을 차지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들은 이런 선진 기술의 대규모 투입(막대한 자본 투자로 가능한) 덕분에 시장에서 우월한 경쟁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과점은 경쟁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그들은] 작고 약한 자본들이 경쟁 압력을 넣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새롭고 낡은 형태의 상호 경쟁을 벌인다.”
제국주의 이론은 독점들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경쟁을 지양하고 궁극적으로는 가치법칙을 폐기하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따라서 일부 저자들은 자본주의적 수입이 오로지 잉여가치의 수취에 의존하는 상황이 종식될 것이기 때문에 잉여가치 증가가 자본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상황도 종식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은 이런 관점에 동의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계급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이미 밝혔듯이 저는 그런 관점을 거부합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로 정식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본주의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의 이론은 일관되지 않은 것이죠.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그런 모순을 볼 수 있습니다.
“자유 경쟁 과정에서 탄생한 독점은 경쟁을 없애지 못한다. 그러나 독점은 경쟁을 넘어서면서도 경쟁과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수많은 날카롭고 심각한 충돌과 갈등을 낳는다.”
저는 독점에 관한 레닌의 분석이 실제로는 과점 경쟁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엄밀한 경제 이론을 폈던 이론가였던 부하린(동시에, 변증법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레닌이 비판했던 것처럼 상당히 일면적 분석을 하기도 했는데)은 독점 자본주의란 개념이 궁극적으로 함의하는 것을 잘 지적했습니다.
그는 제국주의가 국가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할 것이고, 국가자본주의에서는 정치적 통제를 통해, 경제 위기를 낳는 경향(그는 소비와 생산 간, 산업 간 불비례가 불황을 낳는다고 생각했습니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부하린은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은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것은 정치군사적 경쟁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분석 때문에 부하린은 1929년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을 앞두고 심각한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기각했습니다. 제가 제 책에서 지적했듯이,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의 가장 심각한 약점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가치론과 위기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일부 저자들은 중심부 부르주아와 종속국가의 부르주아, 두 지역의 노동계급이 모두 서로 다르다고 봤습니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와 권력의 지구적 위계질서 때문에 자본가뿐 아니라 노동계급 내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씀하신 것이 북반구 노동자가 남반구 노동자 착취에 참여한다는 레닌의 ‘노동귀족론’이나 ‘불균등 교환론’을 지칭한 것이라면 저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이론들은 마르크스주의 가치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입증하지도 못했습니다.
노동귀족론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에서 노동자 반란을 주도하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것이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잘 조직된 철강 노동자들이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노동조합 관료들 ―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를 중재하는 상근 간부층 ― 은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곧 숙련 노동자들이 식민지 이윤에서 이득을 얻는다는 레닌의 노동귀족론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노동조합 관료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것은 레닌이 아니라 로자 룩셈부르크였습니다.
불균등 교환 이론가들은 왜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주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향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남반구의 저임금이 전 세계 잉여가치 창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는데도 말이죠. 1992년에서 2006년 사이에 해외직접투자(FDI)의 3분의 2가 선진국 내에서 이뤄졌습니다. FDI 최대 수혜자는 중국과 인도가 아니라 미국과 영국이었습니다. 물론, 이 통계는 월스트리트와 시티의 인수합병 활동 때문에 상당히 왜곡돼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가치론에서 착취율은 실질임금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선진국들의 생산성 수준이 훨씬 높기 때문에 기업들도 이곳에 더 많이 투자합니다.
물론, 남반구 노동자의 생활수준은 북반구 노동자보다 훨씬 낮습니다. 남반구는 서유럽 같은 발달된 복지국가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주류 사회과학에서 ‘비공식 부문’으로 정의하는 준프롤레타리아와 소상인 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북반구와 남반구를 구분하는 중요한 사회정치적 특징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있다고 해서 북반구 노동자가 남반구의 동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는 말이 성립되지는 않습니다.
식민지나 반(半)식민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17세기와 18세기 제국과 식민지 간 관계와 20세기 이들 간 관계는 어떻게 달랐나요?
식민지 관계는 직접적인 정치적 예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컨대, 175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지속된 영국과 인도 간 관계가 그랬죠. 레닌은 반식민지를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국이지만 금융적 외교적으로 종속된 다양한 [국가] 형태”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1914년 이전 중국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존재했던 영국의 ‘비공식적 제국’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유심히 봐야 하는데, 레닌이 지적했듯이 ‘반식민지’ 지배계급이 형식적으로 주권을 가질 때에도 그들은 다른 국가에 식민지로 종속된 경우보다 운신의 폭이 넓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930년대와 194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그런 경우를 볼 수 있죠. 당시 아르헨티나는 영국과 독일 간 제국주의 경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노력했습니다.
국가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순전히 형식적 겉모습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당한 차이를 낳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오늘날 이른바 ‘반주변부’로 불리는 국가들 ― 중국, 인도, 남한, 브라질, 남아공 ― 을 ‘반식민지’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권과 국가 간 체제가 낳은 기회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독립된 자본축적 기반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질문은 제한된 지면에 답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입니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 간에 존재하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페리 앤더슨이 말했듯이 영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그것이 전(前)자본주의 집단들 ― 동쪽의 공납제 제국과 유럽의 절대주의 왕정 ― 과 경쟁하면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영국은 무굴 제국의 잉여 수취 메커니즘을 계승했습니다. 나중에 인도가 갈수록 자본주의 순환 과정에 편입돼 갔지만 말입니다.
영국 패권이 절정에 도달한 19세기 중엽에도 팔머스톤 경은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와 러시아 같은 대제국과 대적해야 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 같은 자본주의 경쟁자들이 등장하면서 영국 제국주의는 비로소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 과정에서 영국을 제치고 패권 국가가 됐습니다. 미국 패권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자신의 주도 아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협력을 제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45년부터 시작된 브레튼우즈 체제, 유엔, 나토 등의 제도를 건설하는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냉전 종식 이래 미국의 역대 정부들이 시도한 것은 미국 주도의 제도화된 협력 구조를 지속하고 확대(예컨대 나토와 유럽연합의 확장)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상황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이른바 ‘신흥 시장 경제들’(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 터키 등)의 성장이 잠재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불안정입니다. 이들은 앞서 말한 협력 구조의 밖에 있거나 그곳에서 주변적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국가 간 경제 포럼으로서 G8을 G20으로 대체하려는 ― 부시 정부가 시작했고 오바마 정부가 좀더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 시도는 미국이 제도화된 협력 체제를 확대해 이런 나라들을 완전하게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공간에 편입시키려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웨이드는 G20을 미국이 브릭스 국가와 유럽연합을 이간질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했다고 하는데, 저의 해석과 그의 해석은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유럽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가 《미국 외교의 비극》(1959)을 쓴 이래로, 미국을 ‘비영토적 제국주의’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 됐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얻는 것보다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통해 지배하는) 열린 세계 시장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해석이 큰 틀에서 옳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를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죠. 히틀러 치하 독일은 다른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무력을 사용해 유럽 대륙에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이 시도가 군사적 패배로 실패하지 않았을지라도, 무한정 제국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나치 국가는 억압과 테러만으로 당시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을 통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비영토적 지배 전략이 좀더 실현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자본주의가 경쟁자들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먼저 제2차세계대전 중에, 또 냉전 중에 미국이 발견한 것은 이 전략을 실현하려면 미국이 군사력을 굉장히 멀리까지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39년과 1941년 사이, 그리고 1945년 직후, 미국은 영국이 유럽에서 중요한 군사적 구실을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약했기 때문에 미국이 자기 군대를 보내 독일을 패배시켜야 했고, 나중에 특히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소련을 봉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해군과 공군 기지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제2차세계대전 후 이런 과정에 착수했고, 루스벨트와 그의 보좌관들은 태평양 군도들을 접수하려고 크게 노력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18세기와 19세기 영국이 벌였던 일의 연장선상에 서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자신이 힘을 행사하는 주된 수단인 왕립해군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연속성을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미국 국방부는 여전히 지상군보다는 해군과 공군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미국은 최강의 육군을 가지고 있지만, 미 육군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1945년부터 시작해 미 육군이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거의 전 세계 나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던 1990~1991년 이라크 전쟁뿐입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고전했고 베트남에서는 졌고, 최근 이라크 침략에서는 거의 질 뻔했고 아직 이길지 질지 확실치 않습니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상황도 나쁘죠.
군사 침략을 받은 지역(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혁명적 정치는 어떤 구실을 해야 합니까? 이 지역들이 현재 직면한 상황은 순전히 ‘외부’ 침략 때문입니까?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하겠습니다. 이들 지역이 당면한 상황은 순전히 외부 침략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모두 내전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라크에서 저항이 커지자 미국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을 부추겨 간신히 점령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인명 살상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이 직면한 상황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 점령입니다. 원칙적으로 이런 곳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점령에 맞선 투쟁과 계급투쟁을 결합하려고, 민족해방뿐 아니라 사회해방의 길을 닦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치 점령 하 유럽 저항세력의 경험은 그런 관점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 주는 사례였습니다.
불행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세속 좌파는 한때 강했지만 나중에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대중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제국주의 열강과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소련과 협력했고, 이라크 공산당은 2003년 미국 침략 당시 미국에 협력했습니다. 그 결과 이슬람주의자들이 반점령 투쟁을 주도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과 상관없이 이라크 밖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반전운동은 점령 종식에 초점을 맞춰 운동을 건설해야 하지만, 혁명가들은 주로 이슬람주의자들로 구성된 저항세력의 손에 미국과 동맹들이 패배하는 것을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점령지 안에 있는 혁명가들은 매우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좌파를 탄생시키기 위한 초석을 놓아야 합니다.
번역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