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가 정치적이어서는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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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는 학내 문제만 다뤄야 한다’, ‘특정 정치색을 배제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학생회 활동가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쟁점 중 하나다.
그러나 학생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권익’을 지키는 것과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서는 것이 대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김예슬 선언’이 고발했듯, 대학에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나고 모두들 “글로벌 대학”을 외치는 동안에도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등록금 인상, 학문 줄세우기, 콩나물 강의실과 부족한 전임 교원, 자치활동 탄압, 피 말리는 경쟁, 재단 비리 등.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와 기업화, 정부의 교육 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이 필요하다.
정치성을 배제하고 사회 문제와의 연결을 피하는 태도로는 이런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 정치 중립을 표방하는 학생회가 종종 사은품을 나눠 주는 이벤트업체처럼 구는 데 그치거나, 존재감 없이 임기를 마치곤 하는 것은 ‘비정치성’이 학생들의 권익 대변에 효과적일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학생회가 사회운동에 참가하지 말고 학내 문제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학생회는 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다.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적 사건들은 대학생들의 삶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종종 학내 쟁점보다 정치적·사회적 쟁점이 대학가를 압도하고, 학생회가 그런 쟁점에 우선 대응해야 할 때도 많다. 1980년대는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중요한 사회운동에 대해 학생회가 입장을 표명하고 그 운동에 동참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다. 이른바 ‘비권’으로 분류되는 학생회들조차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8년 촛불항쟁 때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또, 경제 위기 속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 들이 노동자·학생 들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것은 대중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학생회는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온갖 고통전가 정책에 맞서는 저항을 지지하고 동참하고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 학내 쟁점 우선주의나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지배자들의 위기 고통전가 공세에 학생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좌파가 학생회를 운영할 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선명하게 밝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진보적 학생회를 지지하면서도 학생회가 특정 정치색을 내세우면 학생들 간의 단결을 해친다고 여겨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좌파들이 종종 학생회를 특정 정치조직의 전유물처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반편향이기도 하다.
물론 학생회는 정치조직처럼 단일한 정치 원칙과 강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통일체가 아니다. 이질적인 견해를 가진 학생들도 학생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학생회를 개방해야 한다.
이럴 때 특정 정치조직의 강령을 다른 학생들에게 강요한다면, 그 학생회는 더는 공동전선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것이다. 단일한 정치 경향의 사람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호 간 정치적 독자성을 보장하면서도 공통의 요구들 — 사회적으로 그리고 해당 대학에서 당면한 문제들 중심의 — 을 중심으로 협력적으로 운동을 건설하는 학생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