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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료 아끼려 건강보험 재정 갉아먹는 기업들

한국 기업주들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사회보장기여금을 적게 내고 있다. OECD 국가들에서는 기업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노동자들이 내는 것보다 1.7배 더 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의 4분의 3 정도밖에 안 내고 있다.

그래서 진보진영은 오래 전부터 기업 부담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해 왔다.

ⓒ사진 임수현

그런데 기업의 사회보장기여금 부담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한국 기업들은 마땅히 내야 할 산재보험료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산재보험에서 급여를 받아야 할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를 받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산재보험료를 아예 안 내는 것이다.

일하다 다친 것은 현행 제도상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게 돼 있고, 이 비용은 1백 퍼센트 기업이 부담하게 돼 있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진료 받은 건수가 총 9만 3천 건으로 1백80억 원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여 환수 조처했다고 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노동자를 강제해 이를 건강보험으로 치료하게 하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치료비를 대신 내 주거나, 아니면 아예 노동자 자신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어차피 사고당한 노동자가 내는 돈은 없으므로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기업이 1백 퍼센트 부담해야 할 치료비의 절반을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건강보험료는 기업과 노동자가 절반씩 낸다.

떠넘기기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기업이 갈취하는 꼴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비정규직, 소규모 작업장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나머지 치료비도 당연히 본인 몫이다. 이 경우 건강보험료 갈취에 더해 사고 당사자의 치료비 부담도 생긴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적발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이 2007년에 시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2006년 한 해에 일하다 다친 업무 중 사고 사례는 1백8만 건인데 그해에 실제로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사례는 8만 9천여 건밖에 안 됐다.

실제 산재 처리해야 할 건수의 12분의 1만이 산재 처리가 되고 있고 나머지는 다 건강보험으로 처리됐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까지 추계되지는 않았지만, 건강보험 재정 손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이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기 위해 부리는 또 하나의 꼼수는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산재보험료를 떼먹는 것이다. 이들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돼 있다. 이러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규모는 비공식적인 추계로 2백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기업이 이들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아 떼먹는 돈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보장기여금에 대한 기업부담비율을 OECD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산재를 책임지지 않고 ‘사기’와 ‘꼼수’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제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기죄’에 해당하는 범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