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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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켈트 호랑이” 호황은 유럽 신자유주의의 성공 스토리로 여겨졌다.
그 호황은 미국의 투자 덕분이었고, 미국 다국적기업들은 아일랜드를 유럽연합으로 진출하는 관문으로 삼았다.
유럽 인구의 1퍼센트밖에 안 되는 아일랜드가 한때 미국의 대(對)유럽 투자 가운데 25퍼센트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다른 곳들에서 더 싼 투자 기회를 찾기 시작하면서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일랜드 국가는 자산 거품을 키웠다. 2006년에 건설 부문이 국내총생산의 20퍼센트를 차지했다.
노동자 일곱 명당 한 명이 건설 산업에서 일했다. 조그만 마을들이 대규모 베드타운으로 바뀌었고 주택·호텔·사무실 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아일랜드 은행들은 여기에 1천억 파운드 이상을 대출해 줬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중앙과 지방 수준 모두에서 정치인들이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들이 터졌다. 개발업자들이 도시 계획 허가를 따내고 건설 계획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뇌물을 갖다 바쳤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일랜드 지배계급은 영국 런던 시티[금융업]의 숨겨진 ‘지원 부서’ 구실을 하면 유동자금을 더블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기 과열
2006년 한 해에만 아일랜드 금융서비스센터[아일랜드 국제금융특구]에 헤지펀드 4천5백억 파운드가 유입됐다.
이 자금의 70퍼센트 정도는 원래 조세 피난처인 케이먼 군도에 있었던 것이다. 투기 과열이 계속되는 동안 노조 지도자들은 임금 억제에 일조했다.
그들은 그 대가로 권력에 입김을 넣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금 이 시스템이 붕괴했다. 자본가의 당인 피아나 페일이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녹색당은 전에 중도좌파를 자처했다.
두 당이 함께 대규모 긴축을 밀어붙였다. 2008년 9월에 정부는 은행 구제 비용을 마련하려고 긴축을 강행하면서 아일랜드 국가 재정 자금을 은행에 바쳤다.
2009년에 거의 3만 명이 삭감 반대 파업을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1만 5천 명 감원, 새로운 형태의 유연화 수용과 임금 삭감 철회 약속을 맞바꾸려 했다.
당연히 정부는 삭감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산 거품이 터지고 세계의 부자들이 아일랜드 은행들에 더는 돈을 넣지 않게 되자 그 정책은 파산했다.